"예쁘죠?"
곁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들었다. 카운터 건너편에서 점원이 웃고 있다. 퉁퉁한 체격의 중년 남자.

"역시. 간토 지방 말씨라서 금방 알아봤어요. 도시 분들은 화초에 대해 잘 모르시니까요."

점원은 즐거운 듯 웃었다. 나 역시 예의상 조금 웃어 보였다.

솔직히 좀 놀랐다. 나야 고급 요정 같은 곳엔 갈 일 없는 사람이지만, 그런 최고급만 따지는 곳이 이런 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이 의외면서도 재미있다.

구원의 저수지―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 무거운 것이 내려앉았다. 구사기조메의 붉은빛마저 일순 퇴색되어 보일 정도로.

아아, 그쪽이란 말인가.

십 년 전, 그 구원의 저수지에서 하나밖에 없는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 오늘은 오빠의 기일. 내가 이곳까지 온 이유도 오빠의 목숨을 집어삼킨 구원의 저수지에 꽃이라도 바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사고를 만나면 ‘하느님, 살려 주세요’ 하고 구원을 비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소송이란 원고와 피고의 싸움이 아니다. 서로 세월과 다투는 싸움에 불과하다. 그만큼 오랜 시간과 인내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기도 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이제까지의 고생이 다 물거품이 된다―지난 십 년간 우리 가족을 지탱해 온 건 오직 이 한마디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위험한 도로일수록 주변의 경치가 아름답다. 악녀는 으레 미녀인 것과 비슷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꽃잎의 빨간색에 마음이 쏠려 문득 생각이 났다.

만주사화의 별명이 ‘저승화’라는 사실이.

"혼자만 살아남아 뻔뻔스럽게 돌아갈 용기가 없었어."

오빠는 조금 더듬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관광객들을 물색해 쓸 만한 사람을 골라 ‘사고’를 연출한다. 그중에 살아남은 한 사람, 두 사람을 교묘한 말로 속여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어…….

그렇게 마을을 유지해 왔던 거다.

‘구원의 저수지’가 누구를 위한 구원인지, 진짜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예를 들자면 나는 회식 자리의 분위기 메이커거든. 내가 없으면 여자들이 전부 심심해한단 말이야. 근데 회식이 끝나고 단둘이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상대는 누구냐 하면 너라는 거야. 세상 참 불공평하다니까."

"맞아, 맞아. 여자들이란 그런 걸 보기보다 상당히 확실하게 계산한단 말이지.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해도 우리 같은 아저씨들에겐 결국 경제력을 바라거든. 조심하는 편이 좋아, 사장님."

기묘한 건,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다 심지어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도 도바를 ‘봤다’는 것 하나만으로 ‘만났다’고 표현하는 그녀의 언어 감각이었다.

알 마음이 없으면 후지산이 분화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어요―.

우리 회사에서 떠도는 소문에 대해 구미코와 실없는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녀가 내뱉은 말이었다.

"소문도 하나의 정보거든요. 이쪽이 얻을 생각이 없으면 귀에 안 들어오고, 얻는다 해도 알고 싶은 형태로밖에 들어오지 않아요."

"어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인데, 신기하다면 또 신기하지 않니? 지폐가 말을 하다니!"

크림소다에서 체리를 끄집어내며 마사코가 말했다.

"응. 그 게임, 언뜻 봐서는 흰 돌이 우세해 보여도 어느 한구석에 검은 돌을 두면 한순간에 다 뒤집혀 버리는 경우가 있잖아? 사람이 이상해지는 것도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제정신인 것과 미치는 것도 아주 작은 일로 뒤집히는 거지."

이마데가와 씨는 뛰기 시작했다. 그 얼굴은 기대에 차 있었다. 옴쭉달싹도 못한 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그가 무슨 장사를 하는지, 무슨 속삭임을 들었는지, ‘그놈들’이 어떻게 하라고 부추겼는지 깨달았다. 그 순간 마사코가 근무하는 은행 쪽에서 예리한 총성이 한 발 울려 퍼졌다.

"설명해 줄게요. 그러니까 잠시 입 다물고 있어요. 둘이서 동시에 말하려고 하면 혀 깨물리거든요. 당신 혀니까 나하고는 상관없지만요."

"형들 여자친구들이 오늘 하룻밤만 당신 몸을 빌릴게요 같은 말을 하는 걸 들었을 땐 항상 부럽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미인이 ‘나의 연인이 되어 주어 고마워요’라고 속삭여 주었다. 머리칼을 만지고, 손을 잡고, 두 눈을 바라보며 웃어 주었다. 그때 마코토를 만졌던 손은 마코토 자신의 것이었지만 기미에의 손이기도 했다.

공주님, 부디 행복하게 지내. 마코토는 사진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아니, 그게 아니지. 그 반대예요. 제가 당신을 ‘가와노 씨’라고 인식하고 난 후부터 당신은 가와노 씨가 된 거예요. 깊은 산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을 때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나무가 쓰러졌을 때 나는 소리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뭐 이런 얘기도 있잖아요. 그것과 같은 이치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