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일지매 이야기의 원조로 꼽는 것은 중국 명나라의 소설가 능몽초凌濛初가 쓴 소설집 『이각박안경기二刻拍案驚奇』에 나오는 도둑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속 난룡嬾龍이라는 도적은 뛰어난 솜씨로 성공한 절도를 자랑하듯 자신이 머물다 간 자리의 벽에 매화 한 가지를 그려놓았다고 한다. 이 소설이 조선으로 흘러들어 유행하면서 일지매 이야기가 실화처럼 자리 잡았던 듯싶다.

조선 후기 과학자로 잘 알려진 홍대용洪大容은 1766년 북경을 방문하고 쓴 『연기燕記』에서 각루의 지붕이 신비한 금속으로 만들어졌다고 기록했다. 홍대용은 그 금속의 이름을 ‘풍마동風磨銅’이라고 전했다.

마곡사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가 탈옥 후 은신했던 곳이라는 점으로도 유명하다. 그중 풍마동 전설과 관계있는 것은 사찰 내 탑이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티베트 양식의 탑이 충청남도에 와 있는 이유는 고려시대 몽골을 통한 문화 교류가 성행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몽골은 13세기 무렵 티베트를 점령했는데, 그 후 오히려 몽골인들이 티베트 불교 문화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서 몽골에서 간섭을 받으며 긴밀한 교류를 유지했던 고려 땅에도 티베트 문화가 건너온 게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고려의 충선왕은 몽골 임금에게 밉보여 티베트로 유배를 가야 했고, 고려를 대표하는 학자로 이름이 높은 이제현李齊賢은 충선왕을 만나기 위해 직접 티베트까지 찾아간 적도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