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에서 가르치기를, 진을 칠 때엔 ‘산은 오른쪽으로 등지고 물은 왼쪽 앞으로 두라[右背山陵·前左水澤]’하였는데 원수께서는 오늘 강물을 등 뒤에 두고 진을 치고 도리어 이같이 대승大勝하신 까닭을 모르겠사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한신은 마음에 기꺼웠다.

"모든 장군은 병법에 있는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죽을 땅에 떨어뜨린 연후에야 살아나며, 망하는 처지에 그대로 두어야 그 뒤에 일어난다[陷之死地而後生, 置之亡地而後存]’라는 것이, 즉 이 같은 것이란 말일세.

바로 ‘배수背水의 진陳’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말이다.

"폐하께서 지금 유생들을 참형에 처하시고 시서詩書를 불사르게 하시는 것은 천하를 그르치게 하는 처사이오니 가혹한 법을 폐하시기 바랍니다."

이같이 꼿꼿한 말을 했다.

"공자의 법이 아니오라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법을 따를 뿐입니다."

동방 창해군은 역사가 깊은 단군조선檀君朝鮮 땅이라 대의大義를 존중할뿐더러 의기남아가 많다 하므로 고 씨를 보냈던 것인데, 다행히 존형을 봐오니 십분 만족하고 다행입니다. 그런데 고 씨는 어디로 갔으며 존형은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잔인무도한 진시황을 제거하려 함은 천하의 대의를 위함이요, 대장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므로 그저 죽이려 했을 뿐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나에게 묻지 마라. 대답하지도 않겠다."

어느 곳을 향해야 할 것인가? 천하가 넓어도 이제 그는 갈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삼사 년 동안 계획해 오던 진시황 암살도 허사가 되고 보니 앞길이 캄캄했다.

"너는 지난날 때를 모르고 큰일을 하려 한 것이다. 창해 역사의 힘을 빌려서 진시황을 죽이려 한 것도 그 잘못이니라. 때를 알면 이치를 알고, 이치를 알면 운을 안다. 너는 네 몸과 마음을 다해 성심껏 배우겠느냐?"

"욕심이다! 내 잘못은 욕심이었다."

입속으로 이같이 부르짖었다. 그는 자기의 육십 평생을 그르친 것이 이것인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약을 마시고 쓰러졌다.

여불위가 죽은 지 십오 년 만에 왕은 육 국을 차례차례 완전히 멸망시키고 스스로 ‘시황제’가 되었던 것이다.

유방은 생각했다. 그리고 장정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모두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현령 영감의 명령으로 여산의 공역에 부역하러 가는데 거기 가서는 고생만 할 뿐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 이미 도망간 놈들은 살 수 있을 것이요, 나를 따라가는 놈은 고생살이를 하다 헛되이 죽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너희도 도망쳐라! 이것이 내가 너희들에게 이르는 말이다."

하루는 번쾌樊噲가 찾아왔다.

"형님! 안녕하십니까. 여기 계신 것을 모르고 애써 찾아다녔습니다."

번쾌는 유방에게 절을 하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자네가 어찌 알고 찾아왔는가?"

‘잘못했다! 초나라에 붙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는 이렇게 후회하면서 수레 밖에서 항우의 수레 뒤에 따르는 우자기를 내다보며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구인가?"

"예, 패현 땅의 패공 유방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한韓나라의 장량張良입니다. 한나라 오 대 정승집 자손이지요. 자는 자방子房이라 부르는 사람인데, 일찍이 의인을 만나 가르침을 받은 바 있어 그야말로 도통한 사람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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