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여기보다 훨씬 넓은 세계에서 왔잖아. 여긴 네 목적지도 아니었어. 이렇게 좁고 갑갑하고, 꽉 막혀 있는 세계는]

"사랑은 석유 냄새 같아."

"미안해. 그게 네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모르겠어. 이게다 뭔지, 난,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이곳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 이곳을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아. 그건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거야. 다른 모든 것처럼."

그러나 이제 단희에게도 입자들은 의미라기보다는 냄새에 가까워졌다. 둔감해진 후각기관은 한때 조안이 했던 것처럼, 공기 중에서 어떤 기억과 감정을 읽었다. 입자들이 단희를 그 시절로 데려갔다. 의미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들에게로 추상적이어서가 아니라그 자체로 너무 구체적이어서, 언어로 옮길 수 없는 장면으로, 조안이 말했던 그 공간들로.

[고마워요. 이제 충분해요.]

현재 지구에도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신을 믿는 종교가 대부분 사라지고 도덕적 규율로서의 종교만이 남아 있듯이, 벨라타의 종교 역시 정확히 그러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이 행성의 시간을 잠시 빌려 온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지요.

"신도 금기도 없지. 오직 약속만이 있단다."

저는 바닥에 머리를 기대고 여전히 그 공간을 떠돌고 있는 목소리의잔해를 들었습니다. 제가 평생을 지나도 이해할 수 없을 어떤 결정들이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벨라타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앎이 아닌 무지이지요.

그때 저는 아주 긴 잠을 자고 있겠죠. 저는 땅 위로 내딛는 당신의발걸음을 느끼고, 꿈결 속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거예요. 오래전이곳에 머물렀던 어떤 반짝이는 시간들을 생각하면서요.

한때 이브는 나의 가장 가까운친구였다. 오랜 시간 나는 이브가곁에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세계는 달라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른이된다는 것은 결국 혼자임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존재로 분화되기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마침내 이 행성바깥의 우주를 온전히 상상하게 될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그곳을 향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십 년도 넘게 언니에게 철저히훈련받은 유물론자로, 세상의 온갖 귀신과 유령,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단지 인간의 편집증적 인지 왜곡과 문화적 산물에 불과하다는지론을 고수해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직접 오게 된 발단이, 나를 유물론자로 훈련시킨 바로 그 언니에게서 온 편지라는 거였다.

언니는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고맙고 사랑하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떠나야 할 만큼 끔찍한 관계도 있을까.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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