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반이 죽었다. 개량 대포를 발사하다가 파편에 맞아 숨졌다(우르반이 정복 이후까지 이스탄불에 생존해 있었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다). 비밀에 부쳤지만 알 만한 이들은 다 안다. 다행히 우르반 없이도 이제는 대포 운용이 가능하다. 이 분야 전문가인 사루자 파샤가 있으니 무슨 걱정인가.

알라여, 당신의 뜻을 지상에서 실현하기 위한 이 성전(聖戰)에 힘을 보태어주소서.
"알라는 다시 너희로 하여금 그들을 승리케 하였으며 재산과 자손을 더하게 하여 그들보다 병력이 더 강하도록 하였노라."(꾸란 제17장 이스라 6절)

오스만은 기본적으로 타민족의 종교를 인정하고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으므로 그 문제로 마찰이나 충돌을 빚을 일도 없었다.

또한 오스만은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중심부를 제외하고는 직접 통치보다는 총독이나 그 지역 세력자에게 자치를 위임하는 정책을 썼다. 그편이 적은 인원으로 피지배 지역 다양한 종족들의 저항을 예방하면서 행정 및 관리를 하기가 수월하고 효율적이었다.

"나는 이 도시에서 라틴 추기경의 모자를 보느니 차라리 술탄의 터번을 보는 편을 택하겠노라."

십자군 전쟁이 그 전형이다. 신의 이름을 팔고 신의 뜻임을 내세웠지만, 결국은 종교를 빙자한 서유럽 기독교 국가들 간의 권력 다툼, 교황과 황제의 알력에서 비롯된 싸움이었다. 십자군들은 같은 신을 믿는다면서 자기들끼리 종교 갈등으로 날을 지새웠다.

가자, 이 도시로!(İstanbul!) 정복하라, 이 도시를!(İstanbul!) 내년 5월의 어느 날, 나는 이스탄불로 바뀐 콘스탄티노플의 밤하늘을 정복 1주년을 기념하는 불꽃들로 찬란하게 수놓을 것이다.

알라는 위대하도다, 인샤-알라(Inch’Alla, in shā’allāh: 알라의 뜻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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