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에는 분절이 없다. 언제부터 봄인지, 어디까지가 겨울인지,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에는 수많은 추위와 따스함이 교차한다. 봄의 난만함으로 가득한 날씨인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폭설이 퍼붓는다. - P30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만들어냈는지조차 잘 모를지라도, 아름다운 보자기는 우주의 한편을 곱게 지키는 것이다. 내 삶이 비록초라하고 간난함으로 가득차 있다 하더라도, 좋은 인연으로 범상한 다른 이들과 만나 서로를 기대고 서는 순간 천지는 온통 아름다운 삶으로 가득할 것이다. - P30

구망궁의 나무엔 이미 먼저 피어나
구슬 같이 아름다운 꽃들 다투어 마름질한다.
상림에 흩어져 오늘 밤 눈이 되어
봄빛 한꺼번에 보내게 하네.

句芒宮樹已先開
珠蘂琼花鬪剪裁
散作上林今夜雪
送敎春色一時來
왕초王初, <이른 봄에 눈을 노래함早春詠雪〉 - P31

‘구멍폰‘은 봄을 관장하는 신이다.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은당연히 구망궁의 궁전일 터, 그 뜨락의 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는것은 봄이 왔다는 의미다. 꽃들은 자신의 어여쁨을 한껏 뽐내면서나무를 마름질하고, 봄을 마름질하고, 천지를 마름질한다. - P31

눈이 녹고 비가 내리기 때문에 ‘우수‘ 라는 이름이 붙었다. 얼음 밑으로 흐르던  계곡물은 이제 서서히 사라져가는 얼음을 녹이며 영롱한 소리를 낸다. 눈이 녹아 계곡물과 합쳐지더니, 이제는비까지 내려 제법 많은 수량을 자랑한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눈석임물‘ 이라 한다.  농부들은 그 눈석임물을 모아 두었다가 봄농사에 대비한다. - P33

등산화로 바꿔 신고 뒷산을 오른다. 사람들의 발자국에 산길은숲속으로 호젓하게 나있다. 해는 벌써 늦은 오후로 비끼면서 맞은편 산자락 눈을 비춘다. - P34

종남산 북쪽 고개 빼어난데
뜬구름 저편으로 눈이 쌓여 있다.
숲 밖은 갠 빛으로 환한데
성안은 저녁 추위 한층 더하다.
終南陰嶺秀
積雪浮雲端
林表明霽色
城中增暮寒
조영祖詠
<종남산의 잔설을 바라보며終南望餘雪> - P34

산을 거의 내려왔을 때, 어디선가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린다.
계곡은 얼음으로 덮이고 그 위에 눈이 쌓였지만, 차가운 얼음장 밑으로 봄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눈석임물이 흘러내려 대지를 적신다.
우수 무렵이라, 이제 새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면서 발길을 내딛을 때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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