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잎 지는 새벽 두 시 누군가 떠나가네

게이타가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미안해. 부모님이 돈 문제에 엄청 엄격하셔서, 나나 동생이나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와 돈거래를 하면 안 된다고 하셨거든."

막상 연인이 되고 보니 게이타가 어울리는 그룹(학년이 높은 사람도 있고 학생이 아닌 사람도 있었다)에 나처럼 얌전한 여자는 없었다.

그와 동료들이 성적으로 문란하고 나한테도 마구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도 불쾌했다. ‘좋아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한다는 분위기도 견딜 수 없게 싫었다.

내 이름은 미에코. 미코라고 고양이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이놈과 이놈 동료들뿐이다. 나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코로 숨을 쉬어도 기이한 냄새가 고역이다. 하지만 입으로 호흡하면 뭔가 매우 나쁜 균을 곧장 들이마시고 말 것 같다.

살아 있는 인간이 더 무섭다. 여자 원령이 있다는 건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산제물이 필요하다니 황당한 이야기다.

"이 건물에 드나들던 많은 사람들 말이야. 살아 있는 사람이나 여기서 죽은 사람이나 저마다 뭔가 생각을 품고 있었겠지. 그건 일종의 에너지거든. 그런 에너지는 당사자가 그 장소에서 없어져도 찌꺼기가 조금씩 남아."

나는 그 집합체인 거야, 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존재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그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게이타 일행보다 훨씬 친절하고,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희망도 있고 절망도 있었겠지. 죽음을 눈앞에 둔 입원환자를 보면서 유산만 생각하는 가족들의 탐욕도 있었고, 사고나 범죄에 휘말려 죽어가는 사람의 원한과 분노도 있었고."

온갖 잔류사념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뒤섞여 진한 칵테일처럼 되어간다. 그런 곳이 병원이라는 장소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사념도 희박해졌지. 하지만 나를 만든 요소는 남으니까 그 후에도 나는 이곳을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의 사념을 새로 흡수해가며 계속 나를 유지해 온 거야."

동시에 사악한 잔류사념과 대결하여 격퇴해 왔다.

"까놓고 말하면 정전기니까."

하지만 나로서는 더 마음이 쓰이는 뉴스가 있었다. 조간 지방면에서 작은 기사를 발견한 것이다. 그 폐병원이 마침내 철거된다, 그 터에는 최신 설비를 갖춘 양로원이 건설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랬구나.

그것은 그녀의 작별 인사였던 것이다. 가버린 것이다. 가야 할 곳으로.

―예쁜 꽃, 고마워.

나야말로 아무리 고마움을 표해도 부족하다. 언젠가 먼 훗날 나도 가야 할 곳에 갈 때가 되면, 그때 만나요.

장미꽃잎 지는 새벽 두 시 누군가 떠나가네 ◎ 소신

두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가급적이면 ‘작가의 말’을 먼저 읽고, 그다음으로 본문, 그리고 마지막에 ‘편집자 후기’를 거들떠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본문은 한꺼번에 후다닥 달리지 마시고 한겨울 서리를 견디며 긴 꼬치에 매달려 있는 곶감 빼먹듯 한 편씩 야금야금 음미하신다면 그야말로 농축에센스와 같은 하이쿠 소설의 묘미를 제대로 즐기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겠죠.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의 90퍼센트가 시대물이고 현대물을 쓴 건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그래서인지 매일매일 뉴스를 접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고 할까요. 요즘은 예전보다 더 여성이 고통받는 사건들이 신경 쓰여서 여성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내용이 많아졌네요. 사회의 어둠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일만큼은 계속 하고 싶습니다."

미시마야 시리즈 대망의 9권에 대한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당부를 전하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권에서는 오치카에게서 태어난 아이 덕분에 미시마야가 행복한 분위기에 휩싸이는 한편 도미지로의 인생에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슬슬 세 번째 청자가 등장할 도움닫기라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 변화무쌍한 백물어도 드디어 반환점을 돌고 있습니다. 옛말에 백물어를 하다가 중간에 멈추면 흉사가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때문에 기어이 99화까지 써야겠습니다(웃음). 부디 마지막까지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1) <창밖 베란다에 키운 여주 커튼 열매는 두 개>의 경우 원래 하이쿠에서는 여주 열매가 ‘세 개’였는데 부부가 등장하는 스토리 전개상 원작자에게 허락을 받고 ‘두 개’로 바꿨음.

2) <장미꽃잎 지는 새벽 두 시 누군가 떠나가네>는 처음 하이쿠를 마주했을 때 떠나간 것이 사람인지 사람 아닌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소설에서 ‘사람이 아닌 뜻밖의 존재’를 등장시켜 하이쿠 작가를 기함하게 만들었다고 함.

3) <산산이 지는 것은 여물고자 함이니 복사꽃>에 등장하는 그림책 작가 아만다 페리는, 『서랍 속의 왕국』을 찾는 독자들이 워낙 많아서 뒤늦게 밝힌 바, 아만다 페리도 『서랍 속의 왕국』도 백 프로 창작임.

창밖 베란다에 키운 여주 커튼 열매는 두 개

미후유는 이불 속에서 남편이 움직이는 기척에 눈을 떴다. 데쓰지가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바닥이 차가울 텐데 슬리퍼도 신지 않은 맨발이다.

요즘은 매일 아침 일어나 주방에 설 때마다 아주 희미하긴 하지만 확실히 불안을 느낀다. 오늘도 그것은 창 밖에서 여전히 파릇파릇하고 동글동글할까, 하며.

이거, 이상한 일 아닌가?

우리 베란다의 여주가 지금도 짙은 초록색 잎을 무성하게 펼치고 있다. 전혀 마르지 않았다. 게다가 열매가 아직도 달려 있다.

메마른 해바라기 불러보니 돌아보는 꽃 있네

버스가 서자 아쓰코는 노선도도 확인하지 않고 올라탔다.

아쓰코는 그러고 보니 저 사람이 초등학생이던 소년 시절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앞으로 함께 살면서 저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호텔 사진실에서 찍어서 세련된 표지와 대지를 갖춘 납채 기념사진은 주방 곤로로 태워버렸다. 몹시 역한 냄새가 났다.

날선 가위여 꽃밭의 맨드라미 목을 자르리

정오가 지나 외근 나간 곳에서 사무소로 돌아오는 길에 시댁 앞을 지나갔다.

프레젠트 코트 머플러 무톤 부츠

마키야마 아타루.
사이타마 현 출생. 열 살 하고 3개월에 키 134센티미터, 체중 30킬로그램. 좋아하는 음식은 사과와 치즈, 그리고 아빠가 만드는 오무라이스카레. 싫어하는 음식은 샐러드. 좋아하는 운동은 수영. 1년쯤 전부터 여동생 아카네에게 『명탐정 히무라 군』 시리즈 읽어주기와 펠트천으로 동물인형 만들기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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