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에서 출발한 이슬람은 주변 문화를 수용하고 발전하면서 가장 동쪽에 가서 꽃을 피웠다. 그 금자탑이 17세기 무굴제국 시대에 세워진 인도의 타지마할이다. 반면 방향을 바꾸어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문화, 에스파냐의 가톨릭 문화를 집대성해 가장 서쪽 끝에서 빛을 발한 작품이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다.

삶의 중심, 모스크
모스크는 이슬람 사원을 말한다. 아랍어로는 마스지드, ‘엎드려 예배드리는 곳’이라는 뜻이다. 마스지드가 이슬람이 지배하던 에스파냐에서 ‘메스키따’로 불렸고, 이 말에서 영어 ‘모스크’가 나왔다.

무아진이 미나레트 꼭대기에서 매일 다섯 차례 낭랑한 목소리로 아잔을 외친다. "신은 위대하다. 우리 모두 예배를 보러 올지니. 알라만이 유일하시고 다른 어떤 신도 없나니, 무함마드는 그분의 예언자임을 증언하나이다."

아라베스크 무늬의 신비
모스크 안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다. 대신 꽃과 나무를 상징하는 무늬와 하느님의 말씀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한 아랍어로 예술성을 표현했다. 이것을 ‘아라베스크’라 한다.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벽면은 푸른빛이 도는 타일로, 바닥은 온갖 색감과 형태를 가진 아라베스크 무늬의 카펫으로 꾸며 놓았다.

아라베스크는 반복과 대칭이 특징이며, 《꾸란》 구절을 아랍어 서체로 꾸며 장식한다. 모든 예술은 결국 하느님의 뜻에 따른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반복과 대칭 구도 자체가 바로 오묘한 신의 예술이다.

무용에서는 고전 발레 자세의 하나로, 한 발로 서서 한 손은 앞으로 뻗고 다른 한 손과 다리는 뒤로 뻗은 자세를 아라베스크라고 한다.

이슬람 건축의 최고봉, 알함브라 궁전
많은 건축가들은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예술 건축물로 동양의 타지마할과 서양의 알함브라 궁전을 꼽는다. 둘 다 이슬람 건축물이다. 알함브라의 매력과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가장 높은 벨라 탑에 오르면 그라나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마을은 무척이나 환상적이다. 새하얀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터를 잡고 있는 이곳이 바로 그라나다의 정신과 영혼을 담고 있는 이슬람 마을 알바이신이다.

카를 5세가 이 궁전을 싫어하거나 파괴하려 한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알함브라 예찬론자였다. "알함브라를 잃은 자여, 불쌍하도다. 알함브라를 버리는 삶을 택하느니 차라리 알함브라를 내 무덤으로 삼을 테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알함브라 궁전에 강한 애착을 보였고, 보압딜의 결정을 안타까워했다.

붉은 석양이 유난히 낮게 깔린 어느 날, 그라나다의 어느 무명 시인은 보압딜의 항복을 두고 목 놓아 울었다.

불운한 왕이여!

죽을 용기가 없어 그라나다를 떠나는 못난 왕이여!

남아 있는 인생이 무어 그리 대단할진대

그까짓 왕관 하나 벗어던지지 못하고

그라나다를 떠나 가느뇨.

유럽인들의 화려한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중세의 긴 암흑에서 유럽이 깨어나는 역사의 전환점이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소위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 시대는 어디까지나 유럽인들에게 국한된 지극히 서구 중심적인 생각이고 역사 인식이었다.

10년이 지난 1990년 11월에는 오만 국왕의 개인 탐사선인 ‘풀크 알 살라마’가 유네스코의 해상 실크로드 조사를 위해 베니스에서 우리나라 부산항까지 고대 교역로를 따라 항해했다. 이 탐사에서 고대 항해로와 교역품, 해류나 항해술 조사를 통해 바다의 실크로드가 거의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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