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민주화를 외치는 이유는 단순히 시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태국 어디에서 태어났든, 어느 가정에서 자랐든, 어떤 학교에 다니고 어떤 직장을 다니든 간에 공평한 기회를 갖고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게 그들의 소망이었다.
실로 아이러니한 일은 이들이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하는 스카이 캐슬은 이 세 가지 요구가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무너질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왕정개혁은 태국의 권위주의적 전통과 역사를 기초부터 흔들어 그들이 학연을 통해 진입하고자 하는 정치·사회·경제적 엘리트층의 입지를 완전히 뒤틀어놓을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결국 제일 먼저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이라는 것을 Z세대가 깨닫게 되면서 새로운 민주화의 역사가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태국의 왕실 모독죄는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은데, 이 왕실 모독죄가 특히 2006년 쿠데타 이후 광범위하고 일관성 없이 적용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검열을 강요해왔다.
군부독재자도 왕의 발밑에 온몸을 바닥에 붙이고 낮추는 것은, 비록 실질적인 권력은 없지만 왕정이 붕괴되는 순간 가부장적 권위주의 위에 세워진 태국의 모든 전통이 무너져 내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2020년 Z세대가 요구한 왕정개혁은 권위주의 타파라는 더 큰 사회적·문화적 개혁이었던 것이다.
2월 7일 랏차담넌 길과 시 아유타야 길을 잇는 랏차담넌 길에 있는 유엔 건물 앞에서 미얀마 국기를 들고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는 태국의 젊은이들과 미얀마 이주 노동자들이 나란히 행진했다. 반목의 역사를 갖고 있는 두 나라의 청년들이 함께 방콕을 민주화의 성지로 재탄생시키는 순간이었다.
짜끄리 왕조의 역사만큼, 독재의 역사만큼, 방콕의 민주화의 역사도 결코 짧지 않다. 그리고 오늘도 민주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땀과 눈물과 핏방울이 수만 개의 쏘이 사이사이에 녹아들고 있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은 ‘단지평원’ 혹은 ‘항아리평원’으로 불리는 곳이다. 넉넉히 잡아 20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돌항아리들이 있는 곳이다. 특히 2019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폰사완의 관광산업을 촉진하려는 라오스 정부의 관심이 단지평원에 집중되었다.
단지평원 제1구역에만 가도 이 평원에 숨어 있는 슬픈 역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불발탄 점검 중이라는 표지판들이다. 베트남 전쟁의 화염을 피하지 못했지만 베트남 전쟁에 가려 지금까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라오스 내전의 상처가 이 단지평원에 오롯이 남아 있다. 폰사완은 작은 도시가 담기에는 너무나 큰 역사를 등에 지고 있는 도시다.
폰사완 역사기행은 단순히 이 도시만의 역사가 아니라 프랑스 식민정부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여전히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한 싸움을 벌여야 했던 인도차이나 국가들(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단지평원이 왜 미군의 무차별 폭격의 장이 되었는지를 되짚어보며 라오스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고리도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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