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도시 중에서도 나는 뉴욕의 평탄한 5번가보다 콜롬비아의 고지대로 오르는 돌계단을 좋아했고, 파리의 널따란 대로보다 몽마르트르 언덕을 훨씬 사랑했다.

그즈음 나는 아직 서른 전이었다. 독신으로 정처 없이 떠돌며 이국의 고독한 객을 자처했고, 세상은 넓고 인간은 발길 닿는 곳마다 청산, 즉 무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세 좋게 돌아다녔다.

"풍류가 없어도 고통은 덜하고, 비루하고 조그만 오두막에도 달빛은 비추네"란 구절이 있듯 쓸데없이 슬퍼하고 분개하며 자길 괴롭히는 건 현인賢人이 갖출 행동이 아닐 터.

우리가 사는 도쿄가 아무리 추하고 더럽다 해도 여기 살면서 아침저녁을 보내는 한은 그 추악함 속에서 약간의 아름다움이라도 찾아내야 한다.

더러움 속에서 멋을 발견해 억지로라도 마음 편히 살도록 스스로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본래 나의 히요리게다 산책에 조금이나마 주의 아닌 주의를 기울이고픈 부분이다.

도쿄 시내의 훌륭한 모습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제일 잘 보인다.

옛 풍경 가운데 명성 높은 곳은 아카사카 레이난자카 위에서 시바 서쪽 구보로 내려가는 에도미자카다.

이들 돌층계 길을 보면 나는 나가사키 마을이 떠오른다. 그 까닭에 히요리게다 신고 딸깍딸깍 모서리가 마모된 돌층계를 위태롭게 한 계단씩 밟으며 부디 도쿄 토목공사가 이곳을 통행에 편리한 보통 언덕길로 만들지 않기를 남몰래 빌곤 한다.

에도의 서쪽 외곽 메구로에는 유히가오카 (夕日ヶ岡 석양 언덕)가 있고, 오쿠보에는 니시무키텐진(西向天神 서쪽 천신)이 있다. 둘 다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기로 이름난 곳이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에도 때의 일이고, 오늘날 일부러 벽촌 언덕까지 지팡이를 짚으며 석양을 보러 가는 우매한 이는 없을 터다. 하지만 나는 요즘 빈번히 도쿄 풍경을 탐색하며 걸으면서 이 도시의 미관이 석양과 꽤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쿄의 석양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새잎이 돋는 5월과 6월, 만추에 젖은 10월과 11월이다. 야마노테는 정원이든 울타리든 가는 곳마다 신록의 싱그러움이 흘러넘친다. 노을이 질 때면 그 나무들 사이로 올려다보이는 붉게 물든 하늘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노을 지는 그늘 아래로 낙엽 밟고 걸으면 강호에 묻혀 사는 시인이 아니더라도 얼마간 감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석양의 아름다움과 함께 논할 것이 시내에서 바라보이는 후지 산 원경이다. 석양이 지는 서쪽 거리에서는 대체로 후지 산뿐만 아니라 그 기슭으로 이어지는 하코네, 오야마, 지치부의 산맥까지 바라볼 수 있다.

분세이시대(1818~1830)에 호쿠사이가 『후지 36경』에 그린 니시키에 가운데 에도 시내에서 후지 산을 볼 수 있는 곳은 열 군데가 넘는다.

호쿠사이나 그 문하생인 쇼테이 호쿠주, 또 히로시게의 판화는 오늘날까지도 도쿄와 후지 산의 회화적 관계를 찾아나서는 이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후지 산 풍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우키요에의 색채에서 보듯 초여름과 늦가을 석양에 비친 구름과 안개가 오색으로 빛나고, 산은 자줏빛으로, 하늘은 붉은 색으로 온통 물들었을 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탈리아 밀라노는 알프스 산맥이 있기에 한층 더 아름답고, 나폴리는 베수비오 화산 연기로 인해 여행자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지 않는가.

도쿄의 도쿄다움은 후지 산을 조망하는 데 있다.

우리에게 애국은 고향의 미를 영원히 보호하고, 국어를 순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의무라 하겠다.

밝은 달 뜨니 후지 산 바라볼까 쓰루가 마을 
  소류

반쪽만 보면 에도의 물건이니 녹지 않는 눈 
  류시

후지 산 보며 잊지 않으려 하네 세밑이구나
호마

봄이 가누나 후지 산도 절하며 잘 가라 하네

자네는 오늘   학을 타고 가려나   후지 산엔 눈

가후 / 다이쇼 4년(1915) 4월

백성들 모두 이곳을 즐기어 아무리 걸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도읍에 사는 이의 행락지로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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