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 안에서
 
나는 지금도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유리문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월동 준비를 해놓은 파초와 붉은 열매가 매달린 낙상홍 가지, 멋없이 치솟은 전신주가 곧바로 눈에 들어오고, 그 밖에 특별히 늘어놓을 만한 것은 없다. 서재에 있는 나의 시야는 지극히 단조롭고 아주 좁다.

마음이 편치 않아 독서도 별로 하지 않는다. 그저 앉았다 누웠다 하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낼 뿐이다.

좁은 나와 넓은 세상을 가로막고 있는 유리문 안으로 가끔 사람이 들어온다. 어떤 때는 뜻밖의 인물이 들어와 내가 예상치 못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나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런 사람들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일조차 있다.

유리문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지도 못할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정치가나 군인, 실업가나 스모 팬을 밀어내고 쓰는 셈이다. 나 혼자서는 도무지 그럴 만한 담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는 음침하게 쓴웃음을 짓고 있는 내 사진을 보내주었지만, 그 사진을 싣는다던 잡지는 결국 보내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게 강아지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졸랐다. 나는 ‘헥토르’라는 대단한 이름을 아이들의 친구에게 지어주었다.

존은 함부로 사람을 무는 버릇 때문에 결국 맞아 죽고 말았다.

원목으로 된 작은 나무 묘비를 사오라고 해서 ‘가을바람이 들리지 않는 땅에 묻어주다.’라는 글귀를 적었다.

"산다는 것을 인간의 핵심이라 생각한다면 그대로 살아가도 지장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나 고귀함을 근본 의의로 놓고 인간을 평가한다면 문제가 달라질지도 모르지요."

숨 막힐 듯 괴로운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그날 밤 오히려 인간다운 흐뭇한 기분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숭고한 문학작품을 읽은 후의 기분과 같은 느낌이었다. 유라쿠자 극장이나 제국 극장에 가서 뻐기고 앉아 있던 내 예전 모습이 공연히 한심하게 느껴졌다.

불쾌함으로 가득한 인생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는 언젠가 한 번은 도착해야 할 죽음이라는 경지에 대해 늘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을 삶보다 편안한 것이라 믿고 있다. 때로는 그것을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상태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죽음은 삶보다 고귀하다."

"살아 있는 것이 고통이라면 죽으면 되겠네요."
아무리 냉정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에서도 이런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삶보다 죽음을 귀하다고 믿는 나의 희망과 조언은 결국 불쾌함으로 가득한 삶이라는 것을 초월할 수 없었다. 더구나 내게는 그것이 실천적인 면에서 나 자신이 평범한 자연주의자라는 것을 입증한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지금도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어지간히 점잔 빼고 앉았네."
그때 친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입에서 ‘응’이라는 대답이 새어나왔다. 어째서 나를 비꼬는 말을 스스로 긍정하는 대답이 그다지도 자연스럽고 간명하고 지체 없이 목구멍에서 술술 잘도 나온 걸까. 그때 나는 투명하고도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거 돋보기 아닌가? 먼 곳이 용케 보이나봐."
"뭐 그냥, 차부도(差不多)야."
나는 ‘차부도’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는 ‘별 차이가 없다’는 중국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날 밤 돌아오는 길에 전차에서 헤어진 친구는 다시 멀고 추운 일본 영토의 북쪽 끝자락으로 떠났다.
나는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다쓰진(達人. 학문이나 기예 등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그의 이름을 생각한다.

유리문 너머로 당장이라도 쓸쓸한 비가 내릴 것 같은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여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모든 인간은 날마다 창피를 당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조차 할 때가 있다. 그러니 이상하게 쓴 글자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정도의 일쯤은 굳이 하려 들면 못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렇게 보였어요. 내장의 위치까지 잘 정돈되어 있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어요."
"내장이 그렇게 잘 조절되고 있다면 몸이 이렇게 내내 아프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몸이 아프지는 않아요."
그때 여자가 갑자기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건 당신이 나보다 훌륭하다는 증거입니다."

나는 이렇게 옛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자주 떠올린다.

내가 시키(마사오카 시키. 시인이자 일본어 연구가)가 살아 있을 때 ‘경종과 나란히 선 높은 겨울나무여’라는 시구를 지은 것은 사실 그 경종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인간의 수명은 정말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한다. 병치레가 잦은 나는 어째서 살아남은 걸까 생각해본다. 그 사람은 어떤 이유로 나보다 먼저 죽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럴 수 있지요. 대부분의 사람이 죽기 전까지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연고가 있는 이 마을 이름은 너무 익숙하게 들으며 자란 탓인지 나의 과거를 불러내는 그리운 울림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재에 혼자 앉아 턱을 괸 채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조각배처럼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두면 이따금 내 연상이 ‘기쿠이초’라는 네 글자와 딱 마주하게 되고 그곳에서 한동안 배회하는 일도 생긴다.

구스오코 씨가 죽었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은 내가 위장병으로 병원에 입원 중일 무렵이었다. 전화로 부고에 내 이름을 넣어도 되겠냐는 문의가 왔던 것도 기억난다. 나는 병원에서 구스오코 씨를 위한 추도시를 지었다.
"국화란 국화는 모두 던져 넣으리, 그대 관 속에."

어리석은 나는 친부모를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믿고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던가. 누가 물어본다 해도 도통 모르겠지만 어느 날 밤 이런 일이 있었다.

"저는 마치 독일이 연합군과 전쟁을 하는 것처럼 병과 전쟁을 하는 중입니다. 지금 당신과 마주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천하가 태평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참호에 들어가 병과 대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몸은 난세입니다. 언제 어떤 변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로 내 태도를 정리하려 한다면 다시 일종의 고민이 생긴다. 나는 나쁜 사람을 믿고 싶지 않다. 또 착한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악인도 아니고 또한 모두 선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의 태도도 상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돼야 할 것이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 안 하시지만 무서운 면이 있어."
나는 어머니를 평한 형의 이 말을 지금도 어둠침침한 기억 저편으로부터 밝은 곳으로 꺼내올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물에 녹아 번지기 시작한 글씨를 급하게 원래 형태로 되돌린 것 같은 절박한 단편에 불과하다.

긴 봄날의 짧은 글
(永日小品)

한참 햇살이 비치는 곳을 바라보는데
눈 밑에 아지랑이가 낀 것처럼 봄의 단상이 넘쳐난다.

《영일소품》은 1909년 1월 <설날>이 《아사히신문》에 게재되고, 1월 14일부터 3월 14일까지 《오사카 아사히신문》에 24편이 게재되었다.
그중 14편은 《도쿄 아사히신문》에도 게재되었다.

주인아주머니로 말하자면 눈이 푹 패고 매부리코에 턱과 볼이 뾰족해 날카롭게 생긴 여자였는데 언뜻 보면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여성성을 초월했다. 신경질과 비뚤어짐, 미련함, 의심 같은 온갖 약점들이 부드러운 생김새를 마구잡이로 농락한 결과 이런 비뚤어진 인상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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