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 모자를 쓰지 않고 망토를 걸치지 않고 오로지 일본 옷만 입는다.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지 못해 누워서 쓰는 버릇이 있다. 한밤중인 한두 시부터 아침 여덟아홉 시까지 글을 쓰고 읽기에 오후 두세 시께 일어나는 날이 잦다.

취미: 바둑 2단으로 두세 점 놓고 둔다. 장기 8단으로 차와 포를 떼고 둔다. 마작 0단. 카페나 요릿집 순례, 여행, 경마(싫어하는 사람이 있나).

생활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
하야시 후미코는 자전적 이야기인 『방랑기』로 일약 인기 작가가 됐지만 늘 순문학 작가를 꿈꿨다. 「청빈의 서」, 「울보 아이」 같은 단편이 좋은 반응을 얻긴 했어도 동시에 ‘가난을 팔아 먹고사는 작가’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세간의 비난에 지치고 글을 쓰다 막히면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다. 돈이 바닥날 때까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돌아와선 글을 써 원고료를 받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러다 1935년 9월 단편 「굴」을 기점으로 자전적 사소설에서 사실주의 소설로 작풍을 바꾸고 마침내 순문학 작가로 인정받았다.
「생활」은 1935년 2월 『개조』에 실린 글이다.

뭐가 애타서 쓰는 노래인가
함께 열리는 매실이며 자두
자두의 파란 몸에 내리쬐는
시골 생활의 평화로움

무로 사이세이 씨의 이 노래가 참 좋아서 매일 흥얼거린다. "뭐가 애타서 쓰는 노래인가" 정말이지 이 노래대로 나는 뭐가 애타서인지 몰라도 거의 날마다 밤이 이슥도록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너절한 그날의 일상을 소설로 쓴다.

신문을 얼추 다 읽어갈 즈음 주전자에 담긴 물이 끓는다. 이 시간이 나에게는 그야말로 천국 같다. 안경알에 입김을 후후 불고 무두질한 가죽으로 깨끗이 닦는다. 그다음 차를 우리고 책상 위 여러 가지 물건을 매만진다. "잘 계셨나요?"라고 물어보듯. 펜은 만년필을 사용한다. 잉크는 마루젠의 아테나잉크. 3홉가량 들어 있는 큰 병을 사 와서 쓸 때마다 즐겁게 잉크를 채운다.

책상 위에는 늘 뭐가 뭔지 모르겠는 잡지와 책이 한가득 쌓여 있다.

모두가 잠자리에 들면 겁쟁이인 나는 1층으로 내려가 문단속을 한 뒤 부엌에서 밤참거리를 챙겨 들고 2층으로 다시 올라온다. 염장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

사실 생각해보면 시골 여학생 같은 생활이다. ‘나의 생활’을 써달라고 해서 이렇게 쓰고 있자니, 별 볼 일 없는 나의 일상이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진다.

비.오늘도 비가 내렸다. 머리를 짜낸 끝에 마침내 「그녀의 비망록」 완성. 스물일곱 매짜리 원고를 『신조』에 보냄. 막과자를 10전어치 사 와서 혼자 먹었다. 작은 순무와 조롱박으로 절임을 만들어봤다. 이삼일 지나면 맛이 들겠지. 어머니로부터 온 편지, 머리가 아프다.
1932년 9월 20일

저녁에 보랏빛 꽃범의꼬리 10전, 개미취 5전을 주고 사 옴. 비에 젖어 개와 걷기. 즐거운 산책이었다. 건널목의 비, 밤의 비, 푸르게 빛나며 비에 젖어 달리는 교외 전차. 더없이 기분 좋다.

하지만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아등바등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 나에게 종교가 있다면, 그저 꾸준히 쓰는 것이다. 그 삼매경에 빠져 있는 기분이다.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결국 ‘만년 문학소녀’다.

다이묘 여행**

**관리나 의원 등의 시찰을 빙자한 관광 여행. 원래는 에도시대 지방 영주 ‘다이묘’의 유람에 빗대어 호화로운 여행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행을 좋아한다. 한 달에 두세 번은 기차를 탄다. 장거리 여행도 아무렇지 않다. 걷는 게 무척 즐겁다. 올 1월에는 나가노 시가고원으로 스키를 타러 갔다. 마루야마의 한 산장에 묵었는데, 운 좋게도 여자는 나 혼자라 눈 덮인 산 위에서 마치 소녀처럼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괘종시계가 1시를 쳤다. 다들 푹 자고 있겠지.
5만 리나 앞에 있는 눈사태처럼 숨소리가 들린다.
2시가 되어도 3시가 되어도 내 책상 위는 새하얀 채다.
4시를 치면 숯 바구니 속 숯이 사라진다.
나는 덧문을 열고 헛간으로 숯을 가지러 간다.
추워서 몸이 얼어붙는 듯하지만
글 쓰는 일보다 숯 집어 드는 일이 훨씬 즐겁다.
어딘가에서 기르는 휘파람새가 울기 시작한다.

"달 어두운 밤 기러기는 높이 난다"고 비참한 날이 와도 원래 몸뚱어리 하나뿐이니 어떻게든 되리라.

‘맑은 물처럼 아무 맛이 없는’ 글을 쓰고 싶다. 지금 내 글은 손짓이나 거짓말이나 꾸밈새가 도드라진다. 괴롭다. 힘이 모자라는지도 모른다. 공부가 부족한 탓인지도 모른다. 툇마루에서 햇볕을 쬐는 듯한 생활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버릇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요시카와 에이지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 소질이 뛰어났음에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두고 일찍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러다 1926년 『나루토비첩』으로 거액의 인세를 받으며 가난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궁핍한 시절부터 함께하며 절약이 몸에 밴 아내는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그 해결책으로 새집을 짓고 고향의 가족을 부르고 양녀를 들여 안정을 꾀했지만, 결국 1937년 이혼했다.
「버릇」은 1935년 출간된 수필집 『초사당수필』에 실린 글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중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못 들은 척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어떤 책에서 읽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짜증을 잘 내기로 유명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하를 통일한 왕이면서도 잔꾀를 부리던 소싯적 버릇을 못 고치고 귀엣말해서 당시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고 한다.

잉크병을 닦는다. 책꽂이를 훔친다. 외출할 때 모자를 솔질해서 건네줘도 한 차례 손가락을 튕겨 먼지를 털어낸다.

책상과 이불과 여자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사카구치 안고는 다자이 오사무,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전후 기성 문학 전반에 비판적이던 ‘무뢰파’를 형성했다. 무뢰파는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주며 인기를 얻었는데, 특히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 젊은이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세 사람은 친분도 두터워서 좌담회를 함께 하거나 카페 ‘루팡’에 모여 술을 마시며 열띤 문학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루팡’은 1928년 긴자에 문은 연 이래 기쿠치 간, 나가이 가후, 가와바타 야스나리, 햐야시 후미코 등 문인들의 단골집이었다.
「책상과 이불과 여자」는 1948년 2월 잡지 『마담』에 실린 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