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원고 언제 주실 건가요!?
일본 유명 작가들의 마감분투기

지은이 다자이 오사무, 유메노 규사쿠, 우메자키 하루오, 호조 다미오, 기타하라 하쿠슈, 요코미쓰 리이치, 마키노 신이치, 호리 다쓰오, 다네다 산토카, 사카구치 안고, 다카무라 고타로, 나쓰메 소세키, 요시카와 에이지, 다야마 가타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무로 사이세이, 모리 오가이, 나가이 가후, 다니자키 준이치로, 기쿠치 간, 에도가와 란포, 하야시 후미코, 나오키 산주고, 이즈미 교카, 야마모토 슈고로, 미야모토 유리코, 오구마 히데오, 이토 노에, 이시카와 다쿠보쿠, 기시다 구니오, 『반장난』 편집부

1장, 쓸수없다

작가의 초상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년 아오모리현 출생. 1930년 도쿄대 불문과에 입학, 공산주의 운동에 몰두하다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 문하에 들어갔다. 1935년 『문예』에 실린 「역행」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복막염 치료를 받다 약물 중독에 빠지고 학교에서 제적당하는 등 시련을 겪으면서도 1936년 첫 단편집 『만년』을 출간했다. 1938년 이부세 마스지의 소개로 결혼하고 나서 안정을 찾고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을 반영한 『사양』으로 인기 작가가 됐다. 1948년 5월 『인간 실격』을 완성한 뒤 6월 13일 서른아홉 살에 연인과 함께 다마강에 투신자살했다. 자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고, 죽기 직전 쓰던 「굿바이」가 미완성 유작으로 남았다.
「작가의 초상」은 1940년 3월 25일부터 27일까지 미야코신문에 연재된 글이다.

어떤 수필이든 열 매쯤 쓰지 못할 리 없건만, 이 작가는 벌써 오늘로 사흘이나 웅얼웅얼 읊조리며 쓰고는 조금 있다 찢고 또 쓰고는 조금 있다 찢고 있다. 일본은 지금 종이가 부족한 상황이라 이렇게 찢어대면 아까운데, 전전긍긍하면서도 그만 찢어버린다.

"무슨 말을 해도 당신, 결국은 자기변호잖아."

목표 삼은 상대에게만 실수 없이 명중하고, 다른 좋은 사람에게는 티끌 하나 묻히고 싶지 않다. 나는 어설퍼서 뭔가 적극적인 언동을 하면 반드시 남에게 헛되이 상처를 입힌다. 친구들 사이에서 ‘쇠갈퀴’란 이름으로 불린다.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 1861~1930)는 무교회주의를 창시한 그리스도교 사상가이며, 쓰카모토 도라지(塚本虎二 1885~1973)는 그의 제자로 성서학자이다.

"어느 여름, 나가노현 구쓰카케 온천에서 선생이 장난으로 내 아이에게 더운물을 끼얹자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내가 하는 일은 다 이렇다, 친절이 도리어 해가 된다고 말했다."

어제 미야코신문에 보낼 수필을 쓰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도무지 써지지 않았다. 수필이 아니라 소설이라면 얼마든지 거침없이 써 내려갈 텐데, 하고 한 달 전부터 구상 중인 단편소설을 되새겼다.

"오늘은 하늘이 맑게 개었으니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가본다. 홍매, 일찍도 피었구나. 세상 만물에 사랑이 깃들어 있구나. 봄은 헛들지 않고 다시 온다" 식으로 시치미를 떼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홀로 일류의 길을 걷고자 노력할 따름이다. 그래서 매일 쓸데없는 고생을 수없이 겪는다. 스스로도 바보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혼자서 얼굴을 붉힐 때도 있다.

별문제 없는 수필 재료는 없는 걸까? 죽은 친구 일을 쓸까? 여행한 일을 쓸까? 일기를 쓸까? 나는 일기를, 지금까지 써본 적이 없다. 아니, 쓸 수 없었다.

"사랑이 뭔지 알아? 사랑은 말이야, 의무 수행이야. 아, 슬프네. 또 뭐냐, 사랑이란 도덕 완수야. 또 뭐냐, 사랑이란 육체 포옹이야. 모두 납득할 만한 말이지. 그럴지도 몰라. 정답일지도 몰라. 하지만 또 하나, 또 하나, 또 뭔가 있다고! 알겠나, 사랑이란…… 나도 잘 몰라. 그걸 안다면…… 말이지." 두 명의 불량배 손님을 상대로 큰일이고 뭐고 맥 빠진 소리만 지껄이다가 잔뜩 취해 곯아떨어졌다.

"이건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 하며쓰던 원고를 찢어버린다.
고작 열 매 내외 원고에
사흘이고 나흘이고 끙끙댄다."
다자이 오사무

"혹시 내 팬은진실한 사건이 아니면쓸 수 없게 된 걸까?"

슬럼프
유메노 규사쿠夢野久作
1889년 후쿠오카현 출생. 1911년 게이오대 문학과에 입학, 1915년 돌연 출가해 2년 남짓 나라와 교토에서 수행했다. 그러다 환속해 규슈일보에서 신문기자를 거쳐 편집장으로 일하며 르포르타주나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1926년 「괴이한 북」으로 잡지 『신청년』 현상 공모에 입선한 이후 추리소설 창작에 매진했다. 1929년 발표한 「삽화의 기적」이 에도가와 란포에게 극찬받으며 괴기하면서도 환상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특히 1935년 출간된 장편 『도구라 마구라』는 구상에서 탈고까지 10년 넘는 세월이 걸렸는데, 읽다 보면 정신이 이상해진다는 평을 들으며 일본 탐정소설 3대 기서로 꼽힌다. 1936년 3월 11일 마흔일곱 살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슬럼프」는 1935년 3월 탐정소설 전문지 『프로필』에 실린 글이다.

미안하기 짝이 없다. 요전번 청탁받은 원고, 한 번 마감을 미뤘건만 또 쓰지 못했다.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버렸다. 약간 자랑 같긴 한데, 나는 여태껏 슬럼프에 빠진 적이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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