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반트(지중해 동부, 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등을 포함한 지역)
플랑드르(오늘날의 네덜란드 남부, 벨기에 서부, 프랑스 북부에 걸친 지역)
관점을 바꾸어 ‘바이킹과 이슬람 세계’로 이 시대를 바라보면 지중해뿐 아니라 북해와 발트해, 한발 더 나아가 흑해와 카스피해까지 이어진 훨씬 역동적이고 장대한 경제 움직임이 비로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중세 서유라시아 세계에서 경제·교역의 주역은 이슬람 세계였다고 생각한다. 유럽은 이슬람 경제 네트워크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점이 좀 더 정확할 것이라고 본다.
유럽과 이슬람 세계를 연결하는 상업 네트워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바이킹
아바스왕조 이전에는 같은 이슬람교도 (무슬림)라고 해도 정통 아랍인이 아니면 지즈야(jizyah)라는 인두세를 강제로 징수하는 등 아랍인과 외부인 사이에 큰 차별을 두었다.
그러나 아바스왕조는 이러한 격차를 철폐하고 이슬람교도라면 누구나 차별 없이 평등하게 대우했다. 말하자면 아랍인 제국에서 이슬람교도의 제국으로 거듭나는 일대 전환을 이룬 셈이다.
아바스왕조를 중심으로 한 광대한 상업 네트워크의 서쪽 끝, 즉 지중해 유럽 권역은 유럽 상인이 분담했다. 유럽은 이슬람 네트워크의 일부에 편입되었던 것이다.
바이킹의 교역로가 없었다면 한자동맹의 번영도 없었을 것이다.
한자(Hanse)란 ‘단체’, 즉 ‘상인 조직’을 뜻한다. 독일 뤼베크를 중심으로 뭉친 도시 공동체인 한자동맹은 12세기 후반부터 15세기에 걸쳐 북유럽 교역을 주도했는데 바이킹의 교역로가 없었더라면 한자동맹의 번영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후 한자동맹의 후계자로 아시아의 바다까지 진출한 이들이 바로 네덜란드 상인이었다. 세계사에서 바이킹이 담당한 역할은 주목하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신항로 개척시대 초기, 포르투갈이 아시아의 향신료보다 더 눈독 들인 물품은 무엇이었을까?
대항해시대 초기 포르투갈은 아시아의 향신료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황금’을 노렸다는데?
사실 ‘대항해시대’는 일본인이 만들어낸 용어다. 영어로 곧장 옮기면 Age of Great Navigation이라 할 수 있겠는데, 영어 문헌에서는 이런 유의 문구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항해시대’는 일본의 라틴아메리카 역사 연구자인 마스다 요시오(増田義郎)가 만든 용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미권에서는 The Age of Great Discoveries, 즉 ‘위대한 발견의 시대’라고 주로 말한다, 어쨌거나 아메리카대륙이든 인도 항로든 당시 유럽인에게는 ‘발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아프리카대륙 서북단 세우타에 포르투갈 식민지를 건설한 1415년부터 러시아인이 유라시아대륙 동쪽 끝에 다다른 1648년까지를 지칭한다.
‘유럽인은 인도가 곧 아시아를 가리키며, 동양의 향신료 등 진귀한 물건을 찾아 대항해를 시작했다’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포르투갈인은 아프리카로 가기 위해 대항해를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추론이다. 유럽인은 아시아의 향신료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황금’을 노렸던 것이다.
카르타고 명장 한니발이 로마를 공격하기 위해 끌고 간 코끼리는 인도코끼리였을까 아프리카코끼리였을까?
메카 순례길에 엄청난 양의 금을 뿌리고 다녀 카이로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던 ‘역사상 최고 부자’ 만사무사 국왕
뱃멀미로 배에 타지 못했던 ‘항해 왕자’ 엔히크
서아프리카에서 이슬람 상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황금을 확보하는 일에 도전한 이가 바로 포르투갈의 항해 왕자 엔히크(Infante Dom Henrique)였다.
‘항해 왕자’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엔히크는 몸소 먼 거리 항해에 나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뱃멀미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
고대 항로 개척자 가운데 특히 페니키아인의 존재와 활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페니키아인은 에게문명에 속하는 크레타문명(2000~1400 BC)과 미케네문명(1600~1200 BC)이 쇠퇴한 이후 지중해 무역으로 큰 번영을 누린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마침내 바르톨로메우 디아스(Bartolomeu Dias)가 희망봉에 도착했다. 1488년의 일이다.
연이어 바스쿠 다가마가 인도의 캘리컷(오늘날의 코지코드)에 도착했다. 이는 1498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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