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하숙인들이 고집을 꺾고 작업복을 빨아달라고 했다. 본인들도 더 이상 참기 힘들 정도로 냄새가 심했다. 복희와 너희 자매와선자는 네 개나 되는 커다란 빨랫감 보따리를 가지고 바닷가 빨래터로 갔다.

사실이었다. 하숙인들은 많이 배운 양반들을 늘 비웃었지만, 이삭은 좋아했다. 선자는 아직 이삭을 남편으로 여기기가 어려웠다.

복희가 동생의 팔뚝을 철썩 때렸다. "미쳤다. 그런 사내는 절대 너랑 혼인 안 한데이. 고 멍청한 생각 좀 머리에서 지워뿌라."

"그 남자를 만나면 안 된데이. 저 남자가∙∙∙∙∙∙∙" 양진이 이삭을 가리켰다. "저 남자가 니 목숨을 구했데이. 니 아이를 구했다꼬. 넌 이제 저 남자 집안 사람이데이. 나는 니를 다시 볼 자격이 없다.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아나? 너는 곧 엄마가 될 기다. 혼인해도 니곁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아들내미를 낳으면 좋겠데이."

"니 남편이랑 있는 데가 니 집이다." 양진이 말했다. 훈이와 혼인할 때 아버지가 양진에게 해준 말이었다. 아버지는 다시는 집에 오지 말라고 말했지만, 양진은 차마 이말을 자식에게 할 수 없었다.
"니 남편이랑 아이를 위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래이. 그게 니가 할일이다. 식구를 고생시키면 안 된데이."

"여기는 돼지하고 조선인만 살 수 있는 곳이야." 요셉이 웃으며 말했다. "집 같지는 않지?"
"그러네. 하지만 우린 잘 지낼 거야." 이삭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 때문에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가진 것이 돌멩이와쓰디쓴 고난뿐이라도 얼마든지 맛있는 국을 끓여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그들에 대해 제멋대로 생각하겠지만, 살아남아서 성공하면 그런 것은 아무 상관 없었다.

요셉이 동생에게 경고했다. "정치나 노동조합, 혹은 다른 어리석은 짓에 얽히지 마. 몸을 사리고 묵묵히 일만 해. 독립운동이나 사회주의를 알리는 전단 같은 건 줍지도 받지도 말고. 그런 걸 가지고 있다가 경찰에 걸리면 체포돼서 감옥에 갇힐 거야. 한두 번 본 일이 아니야."

양쪽을 오가는 밀정들이 있어. 시문학회에도 밀정이 있고, 교회에도있어. 결국에는 독립운동가들 모두 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거야. 그리고 잘 익은 과일을 따듯이 제거하는 거지. 너한테 자백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할 거야. 알아들었어?" 요셉이 걷는 속도를 늦췄다.

"착하게 굴겠다고 약속할게. 형 말잘듣겠다고 약속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러다가 머리가 허옇게 세겠어. 아니면 그나마 남은 머리도 다 빠지거나."

어머니는 남편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설명했다. 임신 중에 부부관계를 해도 된다고 말했다.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을 하래이 남자들한테는 잠자리가 필요한 법이다.‘

"부모님은 제 봉급에서 보낸 돈이라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제봉급으로는 집세와 생활비도 간신히 내요. 동생은 학교에 가야 하고요. 어머니가 저한테 책임지고 동생이 학교를 마치게 하라고 하셨어요. 동생은 공부를 그만두고 일을 하겠다고 자꾸 우기는데, 멀리 보면 어리석은 결정이에요. 그렇게 되면 우린 언제까지고 변함없이 이런 지독한 일만 하게 될 거예요. 일본어를 읽고 쓸 줄 모르면요."

"주님께서 항상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습니다, 목사님." 후가 말했다.
"맞다, 아들아. 잘 말했다."

선자는 경희 언니라고 불렀고, 둘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좋았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이 두터워졌다. 행복을 크게 기대하지도 요구하지도 않던 두 여자에게 이런 우정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경희는 이제 종일 혼자 집에 있지 않아도 됐고, 요셉은 하숙집 딸을 아내로 데려온 이삭에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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