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셋은 밥상머리에 앉았지만 아무도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경준이는 아무런 표정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경준이한테서 어른을 발견했고, 남자와 여자는 확실히 다르다는 영 엉뚱하면서도 분명한 느낌이 드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뜻이라면 우리는 싫더라도 새엄마를 환영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들이 처한 운명입니다. 나는 운명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운명이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커다란 힘이라는 걸 느낍니다.
나는 지게질부터 배우며 수없이 어머니를 불렀다. 매일매일 속울음을 울며 보냈다. 밤마다 꿈속에서 어머니가 울었다. 퍼뜩 잠을 깨고 나면 어머니를 따라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만 나는 어른이 되어서 절대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생각만이 돌기둥처럼 내 가슴에 박혀 있었다.
날이 갈수록 동네에서는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자꾸 죽어가는 것이었다. 난리라는 것은 참으로 호랑이보다도, 늑대보다도 무서운 것이었다.
미역을 감아도, 그늘에 누워도 덥기만 한 긴긴 여름이었다. 낮에는 맘 놓고 말을 할 수가 없고, 밤이면 모깃불도 지필 수 없는 생활이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행여 편싸움에는 끼지 말아라. 살다 보면 강제로 어느 쪽 편에 끼이게 되고, 자의(自意)로 어느 편을 들고도 싶어지는 거지만…… 절대로 끼어선 안 된다. 미리미리 피해야 한다. 이 세상 한평생 사는 게 싸움이 아니다. 노력인 게야. 내 말 알아듣겠냐?"
현민은 말단사원에서부터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편가르기를 좋아하는 동물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은 상대적으로 경계심을 유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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