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의 땅」은 『불놀이』와 함께 여러 나라 말로 많이 번역되었다. 그것으로 내 오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 길게 쓰지 못한 허기 때문에 『태백산맥』은 쓰여진 게 아닐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독자들께서 자유롭게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분단의 상처와 거기에 얽힌 삶의 본질적 의미와의 상관관계를 형상화하고자 했던 「유형의 땅」이 새 독자들에게 새롭게 읽혀지기를 바라는 건 나의 과한 욕심일까.

"이 늙고 천헌 목심 편허게 눈감을 수 있도록 선상님, 지발 굽어살펴 주씨요. 요러크름 빌 팅께요."

영감은 부처님 앞에 합장을 할 때보다 더 간절하고 애타는 심정으로 손을 모았고, 그것도 부족한 것 같아 그만 바닥에 무릎까지 꿇었다.

기운을 써서 세 끼 밥을 먹고 살아가는 축들은 건강의 변화를 의사보다 더 빨리 눈치 채는 재주들을 가지고 있었다.

"시상은 참아감서 살아야 허는 것이여. 한을 험허게 풀먼 또 다른 한이 태이는 것이여. 안 되야, 안 되야, 지발 사람 상허게 말어."

"평생을 있는 놈덜 발 밑에 밟히고 사는 쌍놈 신센 줄 알았으먼 자식 새끼는 애시당초 낳지를 말았어야제라. 요런 세상 불거지지 않았으먼 머 땀새 요런 드러운 꼴 당했을랍디여."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시나브로 세월이라는 것을 한술씩 떠 마시며 죽어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참게한테 물릴 때의 아픔은 대단한 것이었다. 눈에서 불꽃이 번쩍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지 끝이 맵게 쏘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는 손가락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아파지는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이 잘려나가지는 않았다. 눈앞이 노래지며 무릎이 자꾸 꺾이는 배고픔을 없앨 수 있다면 그까짓 아픔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니는 천상 느그 할아부지럴 빼박은 것이여. 쌍놈으로 살기는 피가 너무 뜨건 것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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