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밤사이 참새를 몇 꾸러미씩이나 구워먹었는지 쉴 사이도 없이 잘도 떠들어댔다.

첫째 사회 생활을 하는 남자들만 병에 걸렸고,

둘째 모두가 누구에겐가 협박당하거나 고문당하는 것처럼 공포에 질린 반응을 보이는 것이고,

셋째 잠꼬대는 대략 세 가지로, ‘듣지 못했다, 보지 못했다, 말하지 않았다’였다.

"여봐라, 이 성내에 쓸 만한 환쟁이가 있느냐!"
어느 날 성내를 조망(眺望)하고 있던 성주(城主)가 별안간 물었다.

그는 이 시대의 소시민답게 하나의 보잘것없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증기 터빈의 조그만 나사이거나 자동차의 가느다란 동선에 불과한 자신을 부정하거나 거부할 이유도 방법도 찾을 수 없는 채로 나날을 연명하고 있었다.

도표로 그리면 수평을 이루는 생활. 굳이 비유를 빌린다고 해봤자 시계 불알이나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로 대치되는 나날.

노예 제도의 폐지는 시대적 착오였다. 어차피 몸뚱어리는 목숨의 노예였고, 목숨은 먹이의 노예였고, 먹이는 생활의 노예였고, 생활은 제도의 노예였고, 하나의 제도는 또다른 제도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노예 사슬에서 풀려나기를 원하는 것은 생존의 포기라는 것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계장에서 과장이 되기 위해 상무의 생일을 기억해야 한다는 기본 상식을 터득하지 못한 쑥맥이었다.

그 대신 그는 엉뚱한 일에 스스로를 모반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문제는 그가 그런 자신을 발견하며 철없이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모반이 노예화의 거부라고 해석했고, 거기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며 넘치게 만족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도 했다.

20년 가까운 세월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 정력적이던 옛 스승은 반신불수의 누더기 영감이 되어 있었고 옛 제자는 스승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후 도스토예프스키는 먼지만 뒤집어쓴 채 무식한 한국 젊은 놈을 욕해대며 방구석에 처박혀 지내야 했다.

"뭐라구요? 당신이 하는 짓이 무슨 곰쓸개라도 되는 줄 알아요? 만병 통치는 무슨 놈에 만병 통치."

"외삼촌은 기운이 장사야. 팔뚝에 알통이 얼마나 크다고. 거짓뿌렁이야, 거짓뿌렁. 외삼촌이 죽긴 왜 죽어."

결코 짧을 수 없는 스물여섯의 행렬은 스멀거리는 침묵을 분비하며 말끔히 청소된 복도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수에 비해 복도는 너무나 조용했다. 모두 긴장한 나머지 걸음걸이에 방음의 스폰지를 깔기 때문이리라.

자축연은 자축연답게 계면쩍은 자찬의 미사여구의 홍수와 그에 맞춰 의무적인 박수가 범람하는 속에서 진행되었다.

아침부터 햇살은 무수한 바늘 끝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더위는 바람 업은 안개처럼 서서히 꿈틀거리며 피어올랐다. 출근길에 쫓기는 발길들이 부산하게 그 속을 헤치고 있었다.

"야, 이 개애새끼야, 너 개눈깔 해박았어?"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다섯 자씩의 네 가지 말을 뻔질나게 잘하는 위인일수록 정작 그 속은 반대라는 가당찮은 고정 관념을 길종은 가지고 있었다.

"예수도 배꼽이 있다는 걸 알아둬. 그도 평범한 인간이었단 말야. 다만 용기가 뛰어난 매력 넘치는 사내였지. 미남이었고 말야. 만약 언니나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서 예수한테 프로포즈를 했다면 예수는 단연 날 택했을 거야. 생김새는 그만두고라도 언니처럼 그렇게 무분별하게 치근치근 매달리는 여잘 좋아했을 리가 없잖아. 예수는 자기의 말을 깨닫는 센스 있는 여잘 좋아하지 해결을 강요하는 무디고 미련스런 여잘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두라고."

언니는 불쌍하게도 이 세상의 모든 장사라는 것이 거짓말 콘테스트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볼품은 별로 없으면서 아는 것만 억세게 많은 간호사 원경희─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과히 달갑잖은 존재가 될 것 같았다.

황 검사(檢事), 그 자식 생각할수록 얄밉다. 얄미울 뿐만 아니라 괘씸하다. 그리고 아니꼽다. 하지만 막상 딱지고 보면 얄미울 것도 괘씸할 것도 아니꼬울 것도 없다.

야 임마, 짜아식, 요런 맹추─얼마나 애용했고 친숙해진 말들이던가. 끝없는 우정의 상징으로, 변질되지 않는 신의의 대명사로 만남의 첫마디를 장식했던 말들이다.

아내는 끝내 사랑스러운 아들 영규에게 그리도 소원이던 일제나 미제 분유를 먹여보지 못했다.

"필요한 비용은 염려 말고 일을 좀 해줘야 되겠다."
힘겹게 한 그의 말에,
"내가 자네 돈을 받고 그런 일을 할 것 같았으면 여태까지 전셋집에 살고 있겠나?"
황 검사의 거침없는 대꾸였다.

술에 만취당하는 즐거움을 책 사는 것으로 대신하고, 서재 갖기를 말없는 소원으로 간직한 엔지니어였다.

나는 남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남편은 숨이 막힐 지경으로 날 꼬옥 끌어안았다. 조여드는 압박 속에서 나는 남편이 아직도 젊다는 것을, 나에겐 박달나무 같은 남편의 억센 어깨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동안 흐물거리던 내가 다시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남편의 목을 끌어안았다.

나는 오늘 돈을 벌었어요. 무지무지하게 많은 돈이에요. 얼마냐구요? 3, 3천 원이라구요. 수염이 긴 임금님이 그려진 빠다라시 5백 원짜리 여섯 장을 내가 벌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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