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유럽의 자랑이 된 괴테의 등장
확실히 독일문학은 괴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물론 괴테 이전에도 독일에 여러 뛰어난 작가가 있었지만, 문학사적인 의미 때문이 아니라 작품 자체의 뛰어난 완성도 때문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작가는 많지않다.

괴테는 1832년 3월 22일에, 그가 50년 이상 삶과 예술의 터전으로 삼아왔던 바이마르에서, 아마도 심근경색으로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82세 때의 일이었다.

지적인 아름다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이 이렇게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다른 사례를 나는 알지 못한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후에 괴테를 직접 만나 밝힌 바와 같이, 이 소설을 일곱 번이나 읽었으며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무수한 모방을 부른 ‘베르테르효과"

그러나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독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베르터를 전통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가정의 평화를 교란하는 인물로 바라보았다. 또한 이들은 이 소설이 젊은이들을 자살로 이끈다고 비판했는데, 이는 근거가 없는 주장이 아니었다.

오늘날 밝혀진 바로는 『젊은 베르터의 고통』 발표 직후 베르터를 따라 자살한 남성들이 최소 12명에 이르렀다. 우리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사회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인칭 시점이 아닌 편지 형식을 선택한 이유
굳이 정리한다면 『젊은 베르터의 고통』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베르터라는 이름의 한 젊고 감수성이 풍부한 남성이 약혼자가 있는 여인 로테를 짝사랑하다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는 것. 너무나 간결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줄거리다. 도대체 이 간단한 이야기로 그렇게 긴 소설을 쓸 수 있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에 머물러서는 여러 작품을 쓰기 어렵다. 토마스 만이나 브레히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나 레프 톨스토이, 에밀 졸라나 귀스타브 플로베르 등 세계 문학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작가들은 모두가 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는 시기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 등 경험적 차원을 넘어서는 작품들을 쓴 작가들이다.

계몽주의는 독일어로 ‘Aufklärung’이라고 하는데, 이는 ‘aufklären’이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이때 aufklären은 auf(열다)와 klar(선명한, 분명한), -en(동사화 어미)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서, "(무엇을/누구를) 열어서 분명하게 하다", 즉 "(누군가의 눈을) 열어 분명하게 보여주다"라는 뜻을 가진 타동사다. 따라서 이 동사의 명사형은 ‘눈을 열어 분명하게 보여주기’라는 의미를 가진다.

계몽주의란 미신과 비이성적 사고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 진실을 가르쳐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계몽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 미성숙의 끝이다. 미성숙은 다른 사람의 지도를 받지 않고 스스로의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만약 미성숙의 원인이 이성의 결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겠다는 결정과 용기의 결여에 있다면, 이러한 미성숙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 자페레 아우데! 자기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라는 것이 바로 계몽주의의 슬로건이다.

계몽주의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 글에서 칸트는 계몽이란 ‘미성숙을 끝내는 것’, 즉 ‘미성숙한 자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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