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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건국 영웅, 빌헬름 텔

합스부르크가 악정에 의연하게 맞선 빌헬름 텔
빌헬름 텔(Wilhelm Tell 영어로 윌리엄 텔)은 중앙스위스 지방의 마을 뷔르글렌에서 태어났으며 실력 있는 사냥꾼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아내와 아들이 있었으며, 가족과 단란하고 소박하게 살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어느 날 그는 아들을 데리고 이웃 도시인 알트도르프로 갔다가 이 도시의 규정을 어겼다. 광장에는 지배자였던 지방관 게슬러의 모자가 높은 곳에 걸려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앞으로 지나갈때 모자를 향해 절을 해야 했지만, 그는그러한 규정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지나쳤다. 합스부르크가의 병사에게 잡혀 지방관 게슬러 앞에 끌려간 텔에게 게슬러는 ‘네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리고 활로 명중시켜라‘라고 명령했다.
그는 합스부르크가의 무모한 집정에 저항하기 위해 그 벌을 과감하게 받아들여 멋지게 활을 명중시켰다.

갑작스러운 폭풍으로 탈출의 기회를 얻다

그러나 그는 또 하나의 화살을 숨겨두고 있었으며 이를 게슬러에게 들키자 의연한 태도로  ˝만약 실패하여 아들을 맞추었다면 이 활로  당신을 쏠 작정이었다˝고 대답했다.
게슬러는 분노하여 텔을 그 자리에서 체포하고 자신의 성이 있는 퀴스나흐트로 이송할  것을 명했다. 텔은 퀴스나흐트까지 피어발트 슈테터 호수의 배로 이송될 예정이었지만, 도중에 큰 폭풍우를 만나 배는 포로의 손까지 빌려야 할 정도로  통제 불능상태가 되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배가 호숫가에 근접했을 때, 큰 바위 (텔의 플라테)로 뛰어올라 탈출에 성공한다.
육로를 이용하여 퀴스나흐트로 가서, 지방관의성으로 이어진 좁은 길에서 게슬러가 오기를 숨어서 기다렸다가 게슬러를 활로쓰러트렸다. 이 일로 빌헬름 텔은 일약 영웅이 되었고, 그에게 용기를 얻은 사람들은 합스부르크에  저항하여 봉기했으며, 결국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게 되었다.

단순한 전설을 넘어 건국의 상징

빌헬름 텔과 관련된 일련의 이야기는 중앙 스위스지방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던 전설이었는데, 18세기에 스위스를 여행한 시인 괴테가 친구인 극작가 실러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으며,  실러는 이를 희곡화했다. 그 후,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가 가극으로 만들었으며, 이로써 빌헬름 텔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전설이며 빌헬름 텔도가공의 인물일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이야기의 배경은 스위스 건국 역사와 완벽하게 일치하며, 많은 스위스인은 이 이야기를 ‘상당히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로 믿으며 텔을 존경하고 있다. 또한 텔에게 용기를 얻은 사람들이  합스부르크에 저항하여 봉기한 사건이 바로  1291년 8월 1일의 3개 주 동맹 서약,  즉 스위스 건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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