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의 부활
눈에 보이지 않는 이론이 거대 구조물을 지탱하다

석조 등대 건설 과정에 ‘소성 시멘트’ 분야를 개척해 세계 건축사를 바꾼 토목공학자 존 스미턴

1759년, 존 스미턴이 강력한 시멘트를 이용해 다시 세운 에디스톤 등대가 처음 불을 밝혔다. 이후 전 세계 등대가 이 방식으로 건설되었으니 스미턴은 가히 현대 시멘트 공학의 선구자로 인정받을 만하다.

‘포틀랜드시멘트’를 개발하여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고층 빌딩 건설을 가능케 한 영국 벽돌공 조지프 애스프딘

애스프딘이 발명한 시멘트는 ‘포틀랜드시멘트 (Portland cement)’로 불렸다. 경화된 뒤의
고체가 영국 포틀랜드섬에서 채취되는 포틀랜드석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는 시멘트와 콘크리트 없이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두 물자의 역할은 지대했다.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고층 빌딩이나 거대한 댐, 교량 등도 모두 콘크리트를 이용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1825년
획기적인 고무 제품 탄생
고무 시대가 세상을 바꾸기 시작하다

‘악마의 물질’로 불리며 골칫거리로 전락한 콜타르로 방수포를 만들어 공업화에 성공한 찰스 매킨토시

염색업자는 녹인 고무를 무명천 2장에 발라서 맞붙이면 방수포가 된다는 지식을 터득했고 공업화하는 일에 나섰다.

공업화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초기 생산품은 순식간에 전량 매진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수포는 비가 많이 내리는 글래스고에 안성맞춤인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인물의 이름은 찰스 매킨토시(Charles Macintosh, 1766~1843)로, 지금도 ‘매킨토시’라는 레인코트 브랜드가 유통되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1827년
사진 발명
반도체 제조에도 활용되는 사진 기술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페르메이르도
‘카메라 오브스쿠라’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고?

우표보다 작은 크기 실리콘에 다이오드 100만 개 등 디바이스를 새겨 반도체를 만드는 ‘포토리소그래피’ 기술

1834년
콜타르를 분석하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가치를 찾아내다

골칫덩어리 취급받던 콜타르에서 인공 염료 페놀과 아닐린을 추출해 보물섬으로 만든 독일 화학자 프리들리프 룽게

모두에게 외면당한 룽게의 혁신적인 두 발명품
‘페놀’과 ‘아닐린’의 가치를 알아보고 성공을 일군 화학자는?

룽게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인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룽게의 논문에 주목한사람이 있었다. 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호프만 (August Wilhelm von Hofmann, 1818~1892)이라는 독일 화학자가 바로그다.
호프만이 룽게의 바통을 이어받고 달려 마침내 새로운 시대의 계기를 만든다.

1837년
사진 실용화
은염 사진, 컬러 사진, 디지털카메라로 진화하다

본격적인 사진 실용화의 계기가 된 프랑스 화학자 다게르의 발명품 ‘다게레오타이프’

1839년
고무 실용화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고무의 시대로

고무 실용화에 뚝심 있게 도전해 탄성과 내구성을 갖춘 고무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미국 발명가 찰스 굿이어

굿이어가 우연히 발견한 ‘가황법’으로 전 세계에 신소재 고무 열풍이 불다

굿이어는 생고무에 소량의 황을 첨가해서 가열하면 잘 튕기는 성질이 나타나고 내구성이 극적으로 향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가황법’이라고 한다.

찰스 굿이어의 동생 넬슨 굿이어(Nelson Goodyear)는 황을 25퍼센트 이상 첨가하면 검고 매우 딱딱한 고무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 기술을 발전시켜 ‘에보나이트(ebonite)’라는 이름의 수지로 실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에보나이트는 ‘흑단’을 의미하는 ‘에보니(ebony)’에 ‘~석’을 의미하는 접미사 ‘-ite’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용어다. 에보나이트는 악기의 마우스피스, 만연필 등에 사용된다.

생고무 4,000톤을 얻기 위해 인디오 3만 명을 희생시켰다고?

고무를 구성하는 거대한 분자 폴리이소프렌의
두 가지 구조는?

1839년
아편전쟁
영국의 압도적인 해군력 앞에 몰락한 중화제국

중국 상인의 차 독점 상황이 만든 두 가지 역사적 흐름, ‘아편전쟁’과 인도산 차 ‘아삼 홍차와 다르질링 홍차의 탄생’

아편전쟁의 영향으로 일어난 태평천국의 난으로 2,000만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지다

유럽 열강에 비해 중국의 화포 개량이 더딜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제르튀르너는 왜 양귀비 추출물을 분리한 물질에 그리스 신화의 꿈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을 따서 모르핀이라고 명명했을까?

1841년
농업과 화학의 융합
비료를 공업적으로 인공 합성하는 시대가 오다

한랭화의 영향으로 자전거가 발명되었다는데, 왜일까?

비료를 공업적으로 인공 합성하는 시대가 펼쳐지다

유럽과 일본에서도 도시화가 진행되자 도시에서 나온 분뇨를 농촌에서 거름으로 사용했다.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는 대도시였던 에도는 19세기에 인구가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한데 그 많은 인구를 지탱한 것은 그들이 배설한 분뇨였던 셈이다.

1845년
흑색화약의 종언
새로운 화약의 시대가 도래하다

유럽 각국의 육군 군복이 갈수록 화려해질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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