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콩꼬투리에서 튀어 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 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 P99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 P99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고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 P99
방구석에 처박혀 핀 천리향아 네가 서러운 것은 진하디진한 향기만큼 아득한 거리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지 얼마나 아득했으면 이토록 진한 향기를 가졌겠는가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것은 살을 부비면서도 건너갈 수 없는 거리가 어디나 있다는 거지 - P101
허나 네가 갸륵한 것은 연애 적부터 궁지에 몰리면 하던 버릇 내 숱한 거짓말에 짐짓 손가락을 걸며 겨울을 건너가는 아내 때문이지 등을 맞댄 천리 너머 꽃망울 터지는 소리를 엿듣는 밤 너 서럽고 갸륵한 천리향아 - P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