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찾아라. 인격을 닦아라. 정체성을 지켜라. 살면서 이런 충고 받아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자아‘, ‘인격‘, ‘정체성‘은 무엇인가. 일단 물질은 아니다. 사람의 몸을 해부해 샅샅이 뒤져도 그런 것은 나오지 않는다. 원자 단위까지 쪼개도 헛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것이 있다고 믿으면서 자신과 타인을 대한다. 인문학자는 그런 것이 있다는전제를 두고 인간과 사회를 연구한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인문학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 P79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은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내면을 갈고닦기를 권했다. 그 권고를 잘 실천하는 사람을 ‘성인군자‘ 聖人君子의 반열에 올렸다. - P79
어떤 이는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삼고 살지만 어떤 이는 자신에게 이로운지 여부를 먼저 따진다.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만 관대한 사람이 있고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남에게는 관대한 사람도 있다. - P80
사람의 자아는 각자 다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자아 안에도 서로 다른 여러 면이 있다. 모든 자아는 복잡하고 변덕스러우며 주체적이고 괴팍하다. - P80
다시 맹자를 생각한다.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철학자보다는 과학자가 어울릴 사람이다.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드는사회생물학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는 관찰하고 추론하는능력이 뛰어났다. 유명한 ‘유자입정‘ 이야기가 그 능력을 입증한다. - P87
맹자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는 것을보면 누구나 뛰어가 구한다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측은지심이라는 본성의 발현이라고 했다. 아이 부모와 교분을 맺거나, 마을사람들한테 칭찬을 받거나, 돕지 않았다는비난을 피하려고 그렇게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 P87
"과학이 제공하는 사실을 모르면 우리의 마음은 세계를일부밖에 보지 못한다." - P88
"과학은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마음의 상태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 P88
한때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예술가도 많다. 이미 이승을 떠난 이들 가운데 한 분만 거론한다. 나는 김지하시인의 글을 좋아했고 인간 김지하를 존경했다.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오적」과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작품을 발표했으니 어찌 좋아하고 존경하지 않겠는가. 그가1991년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라는칼럼을 발표했을 때는 실망했다. 대학생이 거리 시위를 하다가 경찰의 곤봉에 맞아 죽고, 퇴행을 거듭하는 정치 현실에분노한 청년들이 분신 투신으로 연이어 목숨을 끊는 때였다. - P91
그때부터는 시든 산문이든 그의 글을 읽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김지하 시인이 젊은 시절 썼던 시와 산문을 여전히 좋아한다. 그때 그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소중히 여긴다. 인생의 한 굽이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기회를 준 시인에게 지금도 감사한다. 1991년 이후 시인의 말과 글이 달라졌어도 상관없다. - P91
좋으면 가까이, 싫으면 멀리, 그렇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독자도 나를 그렇게 대해 주면 좋겠다. - P92
어떤 사람이 가치관과 살아가는 방식을 크게 바꾸는 것을 ‘전향‘이라고 하자. 전향 그 자체는 좋다고도 나쁘다고도할 수 없다. 어디에서 어디로 노선을 바꾸었는지에 따라, 보는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의 전향을 좋게 또는 나쁘게 평가할 뿐이다. 나는 전향 그 자체를 비난하는 데는 공감하지 않는다. 우리는 절대 진리를 알지 못한다. 옳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을 때가 있다. 게다가 ‘자유의지‘라는 것이 정말 있는지 의심한다. 그런 것을 들어 누구에겐가 감정적 호오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P92
가장 재미있게 읽은 과학 책은 『코스모스』다. 이미 여러 번읽었고, 앞으로 또 읽을 것이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맛이 난다. 세이건 선생은 그 책에 20세기가 끝나가던 시점까지 인간이 자기자신과 생명과 우주에 대해 알아낸 중요한 사실을 추려 담았다. 운명적 문과도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감동을 느낄만한 과학 정보를 들려주었다. 무인도에 책을 한 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나는 그 책을 선택할 것이다. 밤하늘·별·바다·풀·나무·새·구름·바람·비가 모두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고독을 견디는 게 수월해질 테니까. - P105
인간과 사회와 역사를 보는 관점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책은 1976년 초판이 나온 『이기적 유전자』다. - P105
다윈주의자는 모든 종이 공통의 조상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가리킨다. 인문학자도 얼마든지 다윈주의자일 수 있다. - P106
『종의 기원』 결론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종은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다. - P106
다윈의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보다 더한 시련을 겪었다. 누구는 진화론을 오용해 인류에 대한 범죄를저질렀고, 누구는 진화론을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준 이론이라비난하고 배척했다. 오용한 쪽은 ‘우파‘, 배척한 쪽은 ‘좌파‘다. 우파와 좌파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다윈주의와 관련해서는 그나마 수월하게 구별할 수 있다. 우파는 생존경쟁을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으로 간주하고 격차와 불평등을 발전의 동력이라고 옹호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정책에 반대하는 개인과 집단이다. 좌파는 사회적 약자, 착취당하는 사람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려는 개인과 집단이다. - P111
사회다윈주의는 ‘열등한 개체‘를 제거함으로써 사회를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 우생학과 결합했다. 민족 또는 국가의 번영을 최고 가치로 내세운 전체주의 사상과 손잡았다.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는 이념의 도구가 되었다. 사회다윈주의와 우생학의 종착점은 유럽 유대인 600만명을 죽인 나치의 홀로코스트였다. - P114
두 가지만 말하겠다. "모든 동식물의유전자는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 있다." 이건 감동이었다. "생물학 이론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이건 충격이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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