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인입니다. 나도 그런 느낌이 듭니다. 풍수사들 대다수가 청와대가 흉터라 끊임없이 얘기해 오지 않았소? 이제 그것이 세상과 엮이니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해 안달들이었지."

"아마도 이전을 반대하다가 분노한 누군가 새로 판을 짜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인 것 같소, 집무실 이전으로 대한민국에 저주가 내렸다고 한다면 대통령님 입장이 얼마나 곤란해지겠소? 가뜩이나 용산으로 가신 데 대한 의혹이 그득한데."
"당신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벽력같은 호통을 치며 나선 사람은 한국 제일의 풍수사라는 노풍언이었다.

"뭐가 잘못되었소?"
노풍언의 기세에 계룡산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표정을 살폈다.
"용산이 어때서 그래요? 거기는 예로부터 군사의 땅이오. 질서와 규율을 세우는 곳이란 얘기지. 지금 이나라에 도대체 무슨 질서가 있소? 상대에 내려와 예절은 깡그리사라지고 헌법 기관들마저 사리사략에 춤추는 개판 아니오? 대통령이 법치를 세우기 위해 용산으로 나가신건 범인이 할 수 없는 경사인데 뭐가 잘못이란 얘기요?"
"나도 옮기자고 찬성했소. 그러나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말이오. 왜 나한테 그러시오?"

"피해자는 워낙 강력 범죄라 신고를 하기는 하지만 노인들이 보여 준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염려와 애정에 대해서는 오히려 감격스럽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처벌도 원치 않는다고."
"저런 미친놈. 지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처벌 안 받는 줄 아나. 그럼 신고를 말든가.
요즘 젊은 놈들은 뭔가 황당해. 하여튼 딱 떨어지는 강력범이니 딸딸 말아. 그리고 언론싹 불러들여."

대책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간 180조나 되는 돈을 들였지만 아무런 효과도보지 못한 일이었다. 대통령은 빈 집무실에서 홀로 독백했다.
‘최악의 유산이야. 재정파탄에 북핵에 인구 문제까지.‘

"목적은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야. 즉 뉴스란 말이지. 그 주목을 끌기 위해 일부러 가스총을 든 거야. 팔순 노인과 가스총. 이보다 흥미로운 뉴스거리가 어디 있겠어?"

"젊은 사람들의 가치관 변화가 이런 사태를 낳았을까요?"
"어떻게 젊은 사람들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거꾸로 기성세대의 책임이 커요. 애가안 나오는 건 결혼을 안 하기 때문이고 결혼을 안 하는 건 첫째,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고 둘째, 남녀 갈등이 크고 셋째, 집을 갖기 힘들고 넷째, 키우기 힘들어서인데 이런 책임20100이 어느 세대에 있겠어요? 우리 한국은 한마디로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밥상을 다 빼앗아 먹었어요. 이런 집값에 이런 임대료에 젊은 세대가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나요?"

"정치인 중에서도 대통령들이 가장 책임이 크겠지요?"
"물론입니다. 사태가 이에 이르도록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대통령들이 티끌이라도 한 게 있나요?"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은요?"
"마찬가지예요. 초고령저출산위원회 부위원장에 그냥 이름만 있는 정치인을 임명했던것 자체가 얼마나 사태를 경시하는지 보여 주잖아요? 인구 부총리직을 신설해 포항제철의 박태준 회장처럼 목숨 걸고 오직 한 길로 인구 문제 해결하겠다는 인물을 찾아 임명해야지요. 이건 포항제철 백 개 만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이대로 가면 인구 부족으로 나라가 소멸해요. 대통령으로서 이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요?"

토요일이 되어 기어코 지질학자를 데리고 집 앞까지 찾아온 은하수의 모습에 형연은실소를 지었다. 진리에 대한 열정인지 비과학에 대한 응징인지 어느 쪽이든 집착이 강한건 예전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예요. 땅을 소유한 사람은 그 땅으로 득 볼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그땅에게 득이 되도록 생각해야 맞아요."

"땅이 주인에게 어떤 도움이 되느냐가 풍수의 초점인 줄 알았는데 거꾸로 땅 주인이땅에 도움이 될 걸 생각하시니 놀랍네요."

오하산방을 다녀온 이후 은하수는 생각이 약간 달라졌다. 그간 풍수니 뭐니 하는 얘기만 들어도 비위가 상할 정도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의외로 치열했다.

"다이이치는 신화적 인물이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 이것이 조선에 건 주문이라면 조선총독부에서도 그 내용을 알았을 거야. 어쩌면 총독부가 앞장서서 이 주문을 실행했을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김용달의 고백으로 미루어 볼 때 현재 진행형 같아."

"글쎄, 나는 언젠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 한국인은 작아져야 마음이 편하게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과거의 빼앗긴 역사를 알고 나면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 상대가 중국이나 일본 같은 강대국들이니 피하고 싶은 잠재의식도 있겠지."

은하수는 형연이 긴 이야기로 우회하여 자신을 꾸짖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너는 우리의 역사에 관심이 없냐고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들처럼 이기적인 삶만을 추구하냐고.

은하수는 혁진의 판정이 그리 틀리진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신나게 혁진과 형연의 흉을 보았지만 속은 전혀 시원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편으로 과거도서관에서 사회에 나가 도움될 공부는 내팽개친 채 온갖 쓸데없는 책을 읽어대는 그를보고 잠시 부러워했던, 깊게 감추어 뒀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다른 공부를 좀 해볼까. 아직 늦은 건 아닐지도 몰라.‘
그러나 은하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그럴 나이도 아니고 자신이 누군가를부러워할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은하수는 많이 취했지만 침대에 몸을 던지는 대신책상 앞에 앉았다. 생각을 이어 간 끝에 은하수는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이 형연이든 누구든 남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기인하고 있으며 그 실체는 헛돌고 있다는 무력감이라는결론에 도달했다. 문제의 핵심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느낌,
은하수는 이 느낌이 어디에서 오는지 곰곰 생각하다 최근 자신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 사건을 떠올렸다.

나이파 이한필베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싶었다. 껍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대신 인문학 공부는 돈이나 지위 같은 다른 힘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져다줘. 바로 내면의 힘이지. 눈에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가지면 가질수록 마음이 편해지고자신감이 차오르며 삶이 떳떳하고 행복해져. 나는 돈을 많이 안 벌겠다, 조금 벌고 그 대신 검소하게 살겠다, 그리고 남는 시간과 열정을 더 의미 있는 일에 쏟겠다고 생각하는거지."
"좋게 들리기는 한다만 그게 그리 쉽게 될까?"

"불안하지. 하지만 인문학이 깊어지면 불안이 인간의 존재 조건임을 알게 돼. 인간이란 어차피 불안에 시달리며 살게 되어 있다는 말이야. 그래서 당황하거나 극단적으로 반응하지 않아. 오히려 실패와 푸대접을 즐기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소하는 힘이 있기때문에 자아의 품위를 간직하며 어려움의 한복판에서 오히려 상대를 위해 베풀기도 해.
일을 할 때도 과정의 진실에 천착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에 덜 좌우돼."

"철령위는 명나라가 설치한 기관이야. 세상 그 어떤 기록도 명나라의 기록보다 정확할수는 없어. 그리고 명나라의 사료들은 모두 철령이 요녕성에 있다고 정확히 말하고 있어."
"뭐?"
요녕성? 은하수는 이상한 눈으로 형연을 바라보았다. 요녕성은 강원도의 철령과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중국의 땅이었다.

"《명사》의 지리지에서는 철령의 서쪽에 요가 흐르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어. 요하는 요녕성을 가로지르고 있고."
"잠깐만. 정말이야?"

고려와 조선의 국경을 철령에 잡아매어 영토를 줄여라, 요동의 철령을 강원도의 철령으로 잡아매어 역사로 가르쳐라! 은하수는 순간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괴이한 얼굴로고함치는 풍수사 다이이치의 모습이, 이케다를 비롯한 총독부와 조선사편수회의 비열한얼굴이 연이어 그녀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역사를 강탈당하는 한국인의 얼굴도 떠올랐다. 일제 치하에 신음하는 얼굴이, 책상에 앉아 철령의 위치를 강원도로받아적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런 거였어."

몇 명의 역사학자들을 더 만난 은하수는 오히려 성진이 말이 통하는 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친절하게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던 학자들은 몇 마디 듣기도 전에 대다수가 불쾌한 표정으로 변해 입을 닫아버렸고 어느 노학자는 모욕적이라며 대화 도중에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일조차 있었다. 그제야 은하수는 학자들을 설득하여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기대였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퍼즐의 수많은 조각 중그들이 허용하고 원하는 조각만 선별해 맞추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조각은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대통령실에 복귀할 때까지 그녀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자비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배급해 주는 게 아닙니다. 자신을 바쳐 남을 이루어주는 것이지요. 자신을 아래에, 사부대중을 위에 둘 수 있으면 진정한 고승입니다. 네가부처라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지요. 자신을 바쳐 누군가를 위하겠다는 마음이 바로 부처입니다."

"물론입니다. 저는 어려운 순간마다 이순신 장군의 상유십이척 미신불사尙有十二隻微臣不를 떠올립니다."
"참 기개가 높은 말씀입니다. 저도 오하산인과 마찬가지로 그 말씀을 좋아합니다."

"네가 그랬지? 세상에는 다른 길이 있다고. 한번 그 길을 걸어보고 싶어. 지금 난 그 어ㅜㅗㅗ느 때보다 즐거워. 앞으로의 모든 날이 기대돼. 여행도 갈 거야. 여행 가서 우리나라 산들도 돌아보고 바다도 돌아보며 내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싶어. 내게 세상이 무엇인지, 또 역사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달리 말해 그 과정이 즐겁지 않은 학생은 평생 단 한 번 쓰지도 않을 것들을 억지로공부하며 낮은 평가를 받고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야 해요."

"주류사학자들은 철령위의 철령이 신고산에 있다 하고, 재야사학자들은 요동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갈등의 골이 엄청나게 깊어요."
"재야사학자들? 그러면 그들 주변에서 수사가 시작되어야 하나?"

"그게 맞습니다. 이덕일을 비롯한 재야사학자, 인하대학교 교수들을 비롯한 비주류 역사학계, 그리고 이들의 과격한 추종자들을 용의선상에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시작해!"

"우연히도 한반도 내에 철령이라는 고개가 있습니다. 바로 강원도와 함경남도의 경계에 있는 철령인데, 이것이 조선사편수회의 눈에 들어간 것이지요. 조선사편수회는 이 철령이 그 철령이라고 덮어씌웠습니다. 슬프게도 이 나라 역사학계는 오늘에 이르기까지일본인들의 음모를 충실히 이행해 고려의 국경선을 원산 이남으로 쭉 그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증거와 자료를 아무리 보여 줘도 이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해방 후 지금에 이르는 근 80년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것입니다."

"글쎄요. 주류사학 측 주장은 없습니다. 그저 조선사편수회가 정한 대로 가르칠 뿐이지요. 이들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그리고 서울대학교를비롯한 전국의 대학들, 각종 연구재단, 연구소 등을 이미 장악하고 어떠한 주장에도 눈과귀를 막고 있습니다. 정연한 논문이 나와도 근거 없는 주장이라 몰아붙이며 무시하는 게다입니다. 저기 데스크를 보십시오."

"그것은 한국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무슨일을 겪어도 줄곧 잊고, 용서한 적도 없으면서 스스로 용서했다 믿고,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당하지 않은 척 체면치레를 하며 약하고비겁한 모습을 보여온 까닭이기도 합니다."

어째서.
야스쿠니를 불태우지 않고 스스로를 불태운 이유가 무엇일까.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민 손을 거두지 않은 한국을 기억하라는 것일까. 그 양심의 빚을 기억하고 살아가라는 저주일까. 정신 나간 테러리스트의 소행일까,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화해를 기원하는 공덕일까,  아니면 그저 단순히 야스쿠니의 방화에 실패한 것뿐일까.

수많은 추측이 겹쳐가는 가운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본인은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수사나 추리의 결말도 논리적 귀결도 아닌 그저 마음이 그려낸 그림이었다. 말로만 수없이 회자되던 용서라는 단어, 나아가 화해라는 단어.이총, 왜덕산, 관동대지진, 야스쿠니, 그런 거북하고 괴로운 키워드들이 모여 기울어진 저울의 반대편에 혼자 조용히불타오르던 형연의 모습이 올라 있었다. 마치 과거의 모든 은원을 사그라트리듯, 세상에흩뿌려진 저주와 귀신을 한데 모아 불태워버리듯, 모든 것이 불로 정화된 정토를 거기 비추어내듯.

야스쿠니에서 불타오르던 한 사람의 모습은 그렇게 세상에 새겨졌다.

나는 이렇게 태어난 사람인가보다.
누군가,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인가보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간 흔적을 더 남기고 싶다.
너와 함께 있었던 증거를 조금 더 남기고 싶다.

"야! 나랑 친구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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