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은 당신을 향하지만, 공감은 나를 향해요. 미안하지만 내가 허락받을 필요는 없어요. 난 당신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아요. 그때의 당신은 작았고, 힘이 없었어요. 며칠을 굶은 사람에게 기름진 음식을 주면 안 돼요. 소화하지 못하니까요. 당신은 우연히 찾아온 행운을 받아들일 여력조차 없었던 거예요."

"겨우 희망 정도에 자격 운운하지 말자고요."

서주. 서책의 주인이라 서주(書主)라고.

그런데 입구를 나서자마자 여인과 마주쳤다. 슬픈 듯, 억울한 듯 여러 감정이 뒤섞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딱 한 걸음의 거리를 두고 말했다.

혼인할 날짜가 잡혔다고.

「신랑은 푸른 실, 신부는 붉은 실이니. 이제 둘은 매듭이 되어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오.」

엄숙한 혼례의 선언이 저주처럼 울려 퍼졌다.

마침내 망설임을 끝낸 남자가 말했다.

「도망가자. 내가 너를 이 지옥에서 꺼내줄게.」

"믿지 않아도 좋아요. 믿어도 상관없고요.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남겨진 이야기라는 게 그렇죠. 들려주는 사람의 바람대로 고치기도 하고, 더하기도 합니다. 사람들 사이를 떠돌며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게 이야기입니다. 영원한 생명력이라고나 할까요. 그 끝에 이런 진부한 이야기가 남았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만."

소화담(韶華談)

: 화창한 봄의 경치와 작은 담화

「삭아 없어지길 기다리고 있어. 몸도, 정신도.」

결론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완전한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다. 여인은 환생을 거듭하며 그를 다시 만나러 올 것이고, 남자는 영원히 살며 외딴 서점에서 그녀를 기다릴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여전히 험난하고 위태로우며 가변적이다. 굳이 말하자면 비극에 가까웠다.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때문에 둘은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함께하게 되었다. 사막에서 별을 세고, 바다에서 일출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눈 덮인 산의 고요를 감상하고. 어느 한가로운 날엔 흘러가는 시간의 무상함과 소중함을 논하고, 함께 잠들고, 깨어나고, 치열하게 살다가 불현듯 평온한 계절을 상상하고. 결말로 가는 먼 여정을 함께 걷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은 영원을 살고, 또 한 사람은 영원히 기억한다. 그러나 그들의 끝은 이렇듯 평범했다. 비로소 인간의 삶이었다.

누군가는 이곳을 창고, 혹은 안식처, 그도 아니면 사랑채라고 부른다. 또 여길 특별히 좋아하는 어떤 이는 다른 이름을 붙였다. 꿈결 같은 허상과 눈부신 실재가 공존하며, 가라앉은 기억과 마음에 그린 미래가 혼재하는 곳. 선으로 그린 심해와 글자로 쓴 우주가 빼곡하게 들어찬 장소.

환상서점이라고.

그녀의 겉모습 또한 재미없긴 마찬가지였다. 고지식하게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교복 치마와 대충 자른 중단발. 웃음기 없이 고집스러운 입매까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은에게 먼저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경주마처럼 책에만 시선을 고정했을 때는 특히 그랬다. 옆으로 쏟아진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온통 가려, 말을 걸기 어려운 기운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잡은 손의 온기가 뜨겁지 않고 애틋했다. 언제 상대방이 사라져버릴지라도. 둘은 아직 먼 이별을 대비하지 않았다. 다만 이 순간을 만끽하고, 사랑하고, 서로 껴안았다.

어느 진부한 옛날이야기처럼. 그들은 오래도록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직 이 순간의 행복을 향한 마음이었다.

오디오 드라마에서부터 종이책까지 《환상서점》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결같습니다. 어느 날, 어디선가 길을 잃었을 때 낯선 모퉁이를 눈여겨봐 주세요. 그곳을 지나면 초록빛 서점이 하나 보일지도 모릅니다. 낡은 문을 두드리면 곧 서점주인이 마중 나올 거예요. 오늘 힘든 하루를 보내셨다면, 그의 낭독을 들으며 잠깐 쉬어갈 수도 있습니다. 다시 길을 나설 힘이 날 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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