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서원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려 인조 12년(1634년)에 세운 서원으로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있다. 김장생의 문하들은 산당을 이루어 효종, 현종 시기에 집권당으로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다. - P10

병영성
하멜 일행은 병영성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탈출하였다. 돌이 세로로 비스듬히 쌓인 병영성의 담은 우리의 전통 담과는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데, 하멜 일행이 네덜란드 방식으로 쌓은 것이라 한다.
전남 강진군 병영면 소재. - P36

초지진
효종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농성했던 경험을 살려 국방력 강화의 일환으로 구축했다. 이후 병인양요, 운요호 사건 등이 벌어진 무대이기도 하다. - P68

부호들의 불평을 꺼려 백성에게 편리한 법을  시행하지 않는대서야 되겠사옵니까? - P103

이에 김육은 호남으로의 확대 실시를 강력히  청한다.

어떤 사람은 백성은 모두 원하지만수령들이  싫어하니 시행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호남 백성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수령들은 불과 50여 명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50여  명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백성이 바라는 바를 안 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본도에서 1결에 거둬들이는 쌀이 60여  두인데 (대동법으론) 10두만 거둬들이면 백성에겐 부담이 다섯 배나 감소되지만 국가의 쓰임엔 부족함이 없으니 무엇 때문에 시행하지  않는단 말씀입니까?

충청의 수령들도 처음엔 모두 이를 시행하지 않으려 했으나 시행한 지 두어 해 만에 시골 백성이 칭찬하고 개들조차 관리를 보고짖지 않으므로 인접해 있는 도에서 크게 부러워하는 상황이 되었나이다.

10두를 제하면 모두 백성이 먹을 양곡이니 구휼의 방안으로도 이보다 좋은 것이 없다 하겠습니다. - P104

녹우당
전라남도 해남군에 위치한 윤선도의 고택이다.
일생을 서인 정권과 맞싸우며 거의 야인으로  살았던 윤선도는 고향에 은거하며 주옥같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 P108

자의대비(장렬왕후) 능
그녀는 가만히 있었지만 그녀가 입을 상복을  둘러싸고 조선사상 최대의 논쟁이 벌어지고 당파투쟁으로 확대된다. 어린 나이에 인조의 후비로 들어온 그녀는 이곳에 홀로 묻혔다.

구리시 동구릉 소재. - P136

인정문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으로, 이곳에서 여러 왕들의 즉위식이 열렸다.
효종과 현종도 이곳에서 즉위했다. - P178

대동법을 위해 일생을 바친 김육의 정치철학은 사뭇 감동적이다. 그는 일관되게 소수의 특권층이아닌 다수의 백성을 위한 정치가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호가 싫어한다고, 관리들이 싫어한다고 백성에게 이익이 되는 법을 행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는 그의 일갈이 오늘의 위정자들에게전해졌으면 좋겠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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