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이곳까지 오신 것도 하나의 연(緣)입니다. 이따 가실 때간단히 배(拜)를 올리고 가시도록 하시지요. 그리고 부탁하신 책은 지금 보여드리겠습니다." - P61
그렇다. 내가 보러 온 것은 탑과 불상과 긴 회랑이 아니다. 내가만나러 온 것은 사람도, 또 하나의 후예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신도, 영혼과의 만남도 아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개인사적 욕망때문도 아니다. 그러므로 탑 대신 폐허를 본다 해도, 사람 대신 부재(不在)를 만난다 해도, 신도영혼도 만나지 못하고 그저 무(無)만을만나게 된다 해도 서러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이곳에 와서 만난 것은 ‘나‘로부터 비롯된 ‘역사‘ 의 강(江)‘이다. - P67
이것은, 이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그들은 나를 선택해서 자신의 곁으로 오게 했다. 부끄러운 기록을태우기 위해서 불을 지른 나를 일부러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이 무너진 폐허에도 역사가 있음을 내게 가르쳐주었으며, 저 초라한 신사에도 황홀하던 영화와 번영이 있었음을 침묵으로 가르쳐준 것이다. - P69
나는 아침에 신문기사에 나와 있던 문제의 자구를 맨땅 위에 천천히 써내려갔다. 마치 천육백 년 전 처음 광개토왕비에 선왕의 공적을 새기던 비문처럼. 왜이신묘년내도해파백잔ㅁㅁㅁ 라이위신민, - P69
백제 들판의 싸리나무 옛 가지에 봄을 기다리노라. 앉아 있던 꾀꼬리는 하마 벌써 울었을까. - P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