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은 죽음에 이르렀음을 깨닫는다.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니 너무 슬퍼할 것 없다. 죽음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으니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 P32
"뜬구름 같은 인생은 예로부터 그러하노라." 왕건은 말을 마친 후 눈을 감았다. 고려를 세운 지 26년이 지났고나이는 67세였다. - P33
고려 후기 대학자 이제현은 왕건의 북진정책을 이렇게 평했다. "우리 태조께서는 왕위에 오른 후에, 신라가 아직 귀순하지 않았고 후백제를 평정하기 전이었는데도, 자주 평양에 행차하여 친히 북방의 변경을 살피셨다. 그 의도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집안의 보배로여겨 반드시 되찾고자 한 것이다. 어찌 다만 계림(鷄林, 신라)을 취하고압록강(鴨綠江)만을 차지하려고 했겠는가!" - P33
"지금 인근의 적이 침입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니, 짐이 직접 군대를인솔하여 적을 물리치러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 P71
자비령 넘는 길은 열여덟 번 꺾이는데 (慈悲嶺路十八折) 장검 하나 들고 지켜 서면 일만 군사를 막을 수 있다네 (一劒橫當萬戈絶) 이제는 온 천하가 태평하니 (四海自昇平) 달은 기울어가고 두견새만 울어대는구나 (空有杜鵑暗落月) - P77
『고려사』에 의하면, 김치양은 이렇게 묘사된다. "양기가 강해서 음경에 수레바퀴를 걸 수 있을 정도였다." - P120
"나는 고려 사람이다! 어찌 너의 신하가 되겠는가!" - P151
이 팔관회가 현종의 마지막 팔관회였다. 현종이 그 이듬해인1031년 5월 사망하기 때문이다. 나이는 40세였으며 22년간 재위했다. 그리고 이 해에 우연히도 고려 현종이 5월, 거란 황제 야율융서가6월, 강감찬이 8월에 모두 삶을 마감한다. - P317
고려 현종, 관용의 정신과 용기를 갖춘 위대한 왕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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