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국지적 폭력은 목적의식적이기 보다는 우발적이었고, 그것을 전국적 차원으로 끌어올릴 만한 지도력의 결핍으로 인해일제 통치권력 자체를 겨냥한 조직적 폭력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함. 무장투쟁의 기운도 고양시켜 갈 수 있을 긴급한 행동방책으로 새로이 구사된 것이 국내 방면의 작탄투쟁이며, 그 행동대 창철이 1919년 6월경부터 길림에서 추진되었고, 마침내 11월에결실을 보게 된 것이 의열단 창립임. 의열단의 창립은 대한독립군부의 후신조직으로 성립한 조선독립군정사기획 작품이며, 재정책임자(회계과장) 황상규가 창단 준비 과정을 주도함." - P70

특히 밀양 독립운동기념관은 의열단 창립 당시의 조직원을 열 명으로봤는데 기존의 열세 명 의열단 창립 설과는 차이가 있다. 열 명은 김원봉, 곽재기, 강세우, 김상윤, 서상락, 신철휴, 윤세주, 이성우, 이종암, 한봉근 등이다. 기존에 알려진 멤버에서 한봉인, 배동선, 권준 등이 제외됐다. 이 중에서 약산과 김상윤, 윤세주, 한봉근 등이 밀양 출신이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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