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서 쓴 돈만 모아도 진짜 바르셀로나에 몇 번은 오갈 수 있었을 테지만, 난 망원동 바르셀로나에 오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졸인다’와 ‘조린다’는 비슷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이고, 그 기다림 속에서 일어나는 노력은 양념이 되어 결국에는 제맛을 낼 테니까.

전세 계약 갱신 시기가 돌아왔을 때 나는 세입자의 설움보다는 술꾼의 즐거움을 음절 단위로 꾹꾹 눌러 다시 한번 말했다.

"무조건 망원동이야."

술집은 잊고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잊기 위해서 마실 때도 있고 잊어야 할 만큼 마실 때도 있다. 잊다가 잃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알코올이 다량으로 함유된 보통의 술자리는 어쩔 수 없이 휘발성이다.

"그럴 거였으면 시작하지도 않았어."

"라면 먹고 갈래?"

연인 사이에 통용되는 문장으로, 우리 집에 가서 좋은 시간 보내자는 의미를 담아 은근하게 건네는 말이다(요즘은 "넷플릭스 보고 갈래?"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습게도 나는 매번 라면을 끓였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스러운 게 아니라는 것도 나중에 직접 나이 먹고 나서야 알게 된 진실.

나는 뭘 그런 새끼들을 집에까지 불러서 라면을 끓여 먹였을까.

내 명의의 집도 아니고 내 취향이래 봤자 먼지처럼 흩뿌려져 있을 뿐인 공간에서, 나의 무엇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길래. 분식집 차릴 것도 아닌데 라면 좀 못 끓이면 어때. 사랑이 라면 국물도 아닌데 좀 식으면 어때. 스스로를 추락시키고 누군가가 사랑의 힘으로 끌어올려 주길 바라던 시절이여, 이젠 안녕. 이불킥으로 하체를 단련하던 시절도, 이젠 안녕.

충무로의 양미옥, 신촌의 황소곱창, 숙대 입구의 굴다리소곱창, 부산역 앞 백화양곱창, 해운대의 해성막창집

정글 같은 광고 회사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인간의 탈을 벗어야 한다! 개처럼 일하고, 소처럼 벌어들이고, 말처럼 달려나가고, 토끼처럼 눈치를 살피고, 뱀처럼 빠져나가야 한다.

회사 일이라는 게 괜히 술 당기는 게 아니며, 괜히 회식 자리가 빈번하게 생기는 게 아니다. 인생의 매운맛을 보여주겠다고 작정한 것 같은 일을 함께 겪고 나면 속이 바짝바짝 마르기 마련이니까.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술자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해입니다. 그런데 저는 좋아하긴 합니다. 많이많이 찾아주세요)

심지어 적당량의 알코올은 창의성에 몹시 도움된답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제니퍼 와일리 교수는 창의적인 문제를 푸는 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 0.075%를 제시하기도 했죠.

일본에선 일을 빨리 끝내는 것보다는 적당히 농땡이 치며 정해진 기간 안에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선 일을 빨리 끝내는 것보다는 적당히 농땡이 치며 정해진 기간 안에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일하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해 일하자. 살아남으면 지독하단 얘길 듣고 나가떨어지면 나약하단 얘길 듣겠지만, 우리 어떤 모습이든 간에 같이 살아 있자.

소맥을 기가 막히게 마는 그때의 ‘걔’와 결혼해서 살고 있는 지금, 나는 확신한다. 지구가 나 모르게 돌고 있듯이 나 역시도 돌아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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