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말 카스트로는 쿠바의 동쪽 끝에서 나와 섬을 가로질러 천천히 서쪽으로 진격했다. 카스트로는 1953년 몬카타에서그가 마주했던 압도적인 적과는 너무나 대비되게 총 한 방 쏘지않고도 정부군 진지들이 게릴라들에게 투항하는 것을 보았다. 반군은 10배로 늘었다. 체 게바라의 유명한 산타클라라 해방에이르러서는 그 숫자가 5만 명에 달했다. - P93
1959년 1월 1일 새벽 2시, 바티스타가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달아나자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와 그의 군대는 라스 빌라스에서 아바나로 진격하여 캠프 콜롬비아에 위치한 바티스타의 사령부를장악했다. 체 게바라는 근처의 라 카바나 요새를 확보했다. 반군은 승리했다. - P93
카스트로는 1월 2일 산티아고 데쿠바에서 첫번째 승리의 연설을 했다. 그는 "혁명은 지금부터"라고 말했다. 그는 사방에서들려오는 열광적인 갈채를 만끽하며 쿠바 전역에 걸친 6백 마일의 행진을 시작했다. - P93
카스트로는 즉시 마누엘 우루티아Manuel Urrutia를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하긴 했지만 5개월 후 그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누가 진짜 쿠바의 지도자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장‘은 바로 피델 카스트로였다. - P93
"애국이 아니면 죽음을Patria o Muerte." - P96
그들의 머리카락과 수염이 그렇게 긴 것은 오랫동안 산속에있었기 때문이다. 산속 생활에서 면도는 너무나 고통스런 일이었다. 긴 머리는 강렬한 햇빛과 벌레, 모기를 막아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긴 머리와 수염이저항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 P119
60년대 미국의 대학생들과 히피들은 쿠바인들로부터 그것을따왔다. - P69
모든 적들에 맞서서 피델 카스트로는 오랜 세월 동안 쿠바 ‘최대의 지도자‘로 남아 있다. 명석하고 카리스마를 가진 사나이,ㅈ웅변과 여론 조종의 달인으로서 카스트로는 조그만 섬나라를 언론과 역사의 최전선에서 머물게 했다. 그런 가운데 그는 현대의가장 일관된 관심을 끄는 세계적 지도자가 되었다. 이 말은 그가가장 보편적으로 존경받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 P130
헤밍웨이와 함께, 사람들과 함께 1960년 바르로벤토 왼쪽의 사진은 1960년 피델 카스로와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공식적으로 만났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듬해 헤밍웨이는 미국에서 자살한다.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피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피델이 <누구를 위해 좋은 울리나>를 통해 게릴라전에 대해 배웠다고 한 말은 유명하다. 이 사진을 찍기 전 20년 동안 헤밍웨이는 간간히 쿠바에 살았는데그와 피델이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 피델은 대체로 물질적인 것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었다. 그는 내가 아는 한 아주 단순하게 살았다.
게바라는 동시에 피델 카스트로가 마르크스-레닌주의식 정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결국 체게바라의 영향력을 감소시켰다. 카스트로의 정부가 점점 소비에트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통제를 받게 되면서 쿠바 시민들은 체게바라가 미숙하고 관료적이라고 생각했고, 그는 이에 격분했다. 그는 오직 광범위한 게릴라전을 통해서만 가능한 제국주의와의 직접적인 투쟁을 갈망했다. - P163
그 누구도, 카스트로 체제를 경멸하는 쿠바 망명자들조차도게바라처럼 살았던 사람은 없다. 그는 자신의 원칙을 절대로 굽히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 P164
체게바라와 그의 딸 1960년 아바나, 체게바라와 4살 된 그의 첫딸 일디타. 딸은 체와무척 닮았다. 일디타는 1995년에 죽었는데, 아버지가 죽은 나이와 같은 39살이었다. 일디타의 왼손을 잡고 있는 군인은 안토니오 누네즈지메네스로 카스트로의 측근이다. - P167
그리스도를 닮은 체 1963년 아바나, 체게바라를 찍은 강렬한 사진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그는 어떤 사람들이 말했듯이 거의 그리스도처럼 보인다. - P177
체 게바라를 위한추도 벽화 1967년 10월 17일. 1967년 10월 9일 볼리비아에서 체는 추격당했고, 죽었다. 당시 쿠바에 있던 사람들은그것을 몰랐다. 한 주가 지난 후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아바나에돌기 시작했다. 나는 신문사에가서 사실을 확인했다. 카스트로는 24시간 후 텔레비전에 나와서 모든 이에게 그사실을 밝혔다. - P182
케네디 행정부의 가장 커다란 재앙은 말할 필요도 없이 피그만 침공의 실패다. 이 침공 작전은 미국 정부의 훈련과 무기지원을 받은 약 1,500명의 쿠바 망명자를 주축으로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취임한 뒤 3개월 후인 1961년 초,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하고 있던 쿠바를 공격한 사건이다. 카스트로를 타도하려는 이 시도는 미사일 위기에 불을 당겼고 이것은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을 극에 달하게 만들었다. - P187
공산주의를 환영하다 1974년 1월 아바나, 흐루시초프의 자리를 이은 레오니드 브레즈네의 방문은 카스트로에게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것은 소비에트 연방이 쿠바를 인정했다는 의미였다. 소비에트의최고 지도자가 쿠바에 온 것은 처음이었고 라틴아메리카를 통틀어서도 그랬다. - P209
쿠바의 최대 아이러니는 천혜의 아름다움으로 축복받은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는 혼란과 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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