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전쟁, 세계대전 그리고 외부세력의 점령 - P222
"그리스의 진정한 독립이라니, 말도 안 된다. 그리스는 영국이나 러시아 것이 될 수 있겠지만 러시아 것이 될 수는 없으니 영국 것이 될 수밖에." - P223
19세기에 벌어진 열강들의 패권 경쟁에서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지중해 유역에서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 P223
이 시기를 거쳐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영국은 아예 그리스라는 나라의〈보호자>로 자처했다. 그 바탕에 깔린 것은 그리스가 아니라 자신들의 제국을 보호하겠다는 저의였겠지만. - P223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했다. - P223
1913년, 제2차 발칸 전쟁이 개시됐다. - P223
제1차 세계대전은 그리스에게 딜레마를 안겨준다. 자신들의 패를 쥐고 있으면서 그대로 굳히느냐, 아니면 한판 벌여서 더 큰 대박을 터뜨리느나라는. - P224
반면 터키 민족주의자들은 그리스 군대의 출현을 터키 독립전쟁의 시발로 보았다. 1922년 여름, 터키 내부로 꽤 깊숙이 밀고 들어와 있던 그리스군은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 후에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됨)이 지휘하는 터키군에게 밀리면서 허겁지겁 해안지대로 퇴각해야만 했다. 결국 그리스군이 아닌 터키 부대가 스미르나로 입성하면서 전쟁은 끝이 났다. - P226
불길에 휩싸인 도심에서수만 명이 사망하고 도시는 잿더미가 되었다. 더불어 비잔티움 제국을 재건하려던 그리스의 꿈도한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 - P226
많은 이들이 공산당을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궁극적으로 군사 정변과 권위주의 정권이 출현하는빌미를 가져왔다. - P226
그나마 이 나라의 지리 덕분에점령군은 내륙 전체를 지배하진 못했고 그리스는 결사적으로 항전할 수 있었다. - P227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테살로니키의유대인들은 겨우 9퍼센트에 불과했다. - P227
"그리스 군대가 이 나라를 통치하기로 한다." - P229
그리스의 지리와 정세가 이 나라를 EU의 골칫거리인 두 가지 주요 위기의 최선봉에 세운 덕분이었다. - P230
난민, 또 다른 갈등과 분쟁의 시작 - P230
보다 분명한 역사적 근거가 있는 두 나라 간전투는 1071 년 동터키 지방에서 비잔티움의 그리스인들이 셀주크 투르크와 대결했던 만지케르트 전투다. 실제로 셀주크 투르크 전사들이 훨씬복잡하게 구성됐다고는 하지만 이 전투에서 그리스인들이 패하면서 비잔티움이 콘스탄티노플을잃는 길을 열어주었다. - P234
그리스 사람들은 이 얘기를 할 때마다 그 일 이후로 4백 년에 걸친 터키의점령을 견뎌내야 했다고 말한다. 현대로 들어와서는 그리스 독립전쟁과 1919년부터 1923년까지 벌어진 그리스-터키 간 전쟁이 양측에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 P234
에르도안 대통령이 2019년에 이스탄불 국립국방대학교를 방문해서 에게해절반이 터키 땅으로 그려진 지도 앞에 서서 찍은공식적인 사진도 있다. - P234
6천 개의 섬과 바다를 위한 엄청난 국방비 - P234
"에게해 제도는 그리스에게는 그 섬들에 항공기, 로켓, 기동 타격 부대들을 배치함으로써 아나톨리아 배후지와 지중해 동쪽에 있는 국가들의해안에까지 힘을 과시할 수 있는 무적의 항공모함이나 다름없다. 이것들이 없다면 그리스는 동쪽에서 가해 오는 위협을 쉽게 방어할 수도 없고, 지상으로 상륙하려는 적들에게 취약할 뿐 아니라, 해상봉쇄를 당하기 쉬운 그저 바위투성이 반도에 불과할 뿐이다." - P235
한마디로 군사적으로는 끝장이라는 것이다. - P235
에르도안의 발언 상당부분은 그의 지지 기반이 되는 터키 국내를 의식한 것이라지만 "잘못된역사 흐름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라는 그의 말은 해마다 그리스의 국방비를 늘리도록 하기 위한 로비의 실탄을 제공해 주는 것 못지않게 아테네의 군사 전략가들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할 만했다. - P235
사이프러스를 두고 벌이는 위험한 게임 그리스가 여전히 수호자로 자처하고 있는 사이프러스는 전략적 지정학이라는 고속도로의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동부지중해의 주요항로인데 최근에는 천연 가스전까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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