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렇게 보는 게 가장 적절합니다. 실제와 허구, 어느 한쪽으로보기보다는 둘이 서로 섞어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거예요. 즉 시에나를 이상적인 도시의 기준으로 삼아 이를 더 미화시켜 그린 그림인거지요. 도시 안에 춤추는 사람을 그려 넣은 것도 사람들이 덩실덩실 춤을 출 만큼 나라가 태평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 P116

활기찬 시장이 중심이 되는 걸 보면 태평성시도나 로렌제티의 좋은정부가 다스리는 나라 모두 경제 번영을 평화로운 도시의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평화로운 도시를 상상하면서 상업 활동을 아주 생생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 P119

위의 사진과 그림을 보세요. 왼쪽이 오늘날 시에나의 전원 풍경이고 오른쪽이 그림 속 전원 풍경입니다. 중간중간에 조금씩 숲이 자리한 언덕에 농작물이 줄지어 있는 모습은 지금이나 700년 전이나똑같아 보입니다. 이렇게 보면 로렌제티의 그림은 화가가 상상력을발휘해서 그린 유토피아 같은 곳이지만 바탕은 자신들의 생활 터전인 시에나와 그 주변의 세계였던 거지요. - P121

그런데 왜 평화의 여신만 저렇게 누워 있나요?
꼭 다른 신들이 열심히 일하면 자신은 하는 일 없이 쉬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지않나요? 사회가 잘 돌아가면 평화는 그냥얻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뻔한 교훈이지만 이걸 이토록 거대한 그림으로 그렸다는 점이 독특해요. - P125

벽화가 그려지던 때 시에나는 한 명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아홉명의 국무위원이 함께 통치하는 집단 지도 체제였습니다. 대통령이나 집정관 1인이 통치하는 방식은 독재 정치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도시 내의 정치 세력들에서 각각 대표를 뽑아 한시적으로 통치하는방식을 택한 거죠. - P127

두초는 시에나를 주 무대로 활약한 화가입니다. 두초가 시에나 공화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대성당 안에 그린 제대화가 아래 마에스타죠. 마에스타는 ‘위대한 자‘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위대하신 성모 마리아를 말합니다. - P137

마에스타는 나무 패널을 이어 붙여 만든 그림 중에서는 상당히 큰작품에 속합니다. 사실 벽화를 제외하면 이 시대에 그려진 작품 대부분은 이러한 패널화입니다. 오늘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볼 수있는 작품도 패널화가 많고요. 패널화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은 제대 위에 놓이는 그림인데 제대 위에 놓인 그림이었다고 해서제대화라 부릅니다. - P139

스크로베니 예배당에서 조토를 만나보았고, 시에나에서는 두초를만나보았으니 이제 초기 르네상스의 거장 두 사람을 모두 만나본 셈입니다. 이쯤에서 르네상스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중요 포인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로 르네상스 그림을 두 개의 타입으로 구분해감상하는 방법입니다. 일단 성모자상을 중심으로 비교해볼까요? - P142

마돈나는 성모마리아를 뜻해요. - P145

시에나는 로마로 가는 순례길이 통과하던 도시로, 오늘날까지 이탈리아 중세도시국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당시 시에나는 피렌체와 경쟁하며 도시의자긍심이었던 도시 미관을 정돈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이러한 노력은도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 P151

세계는 일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한동안 흐느끼는 사이에종말을 맞을 것이다.
제인 구달, 희망의 이유 중 - P152

흑사병의 파괴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흑사병의 충격이 제2차 세계대전보다 컸다고 보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대략 6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 엄청난 전쟁의 참화도흑사병의 충격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 P154

그런 점에서 르네상스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역사가발전해서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세계가 밝아오는 게 아니라 엄청난대재앙이 벌어지자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바로 르네상스일수도 있다는 겁니다. - P157

흑사병 시대가 오자 무엇보다도 종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가장 먼저 변합니다. 이전보다 종교에 더 깊게 몰두하는 사람이 늘어난 겁니다. 앞선 시기에도 죽음은 언제나 삶과 가깝게 있었지만 흑사병 때문에 죽음이 삶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왔을 테니까요. - P157

앞서 흑사병에 걸려 죽게 되면서 전재산을 파리에게 준 사람의 얘기를 해드렸는데, 이처럼 흑사병에 걸려 죽을 때에는 병자성사도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무서운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이에게 다가가서 성사를 거행해줄 용감한 성직자를 기대하기가 어려웠으니까요.
다시 말해 사람들은 종교도 자기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된 거예요. - P158

네,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르네상스 때 의학이 눈부시게발전한 건 상당 부분 흑사병이라는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결과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화가가 해부학을 연구한이유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하고 관련이 있었던 겁니다. - P159

그러나 두 수도회는 추구하는 바가 약간 달랐습니다. 프란체스코수도회는 대중을 상대로 포교 활동에 주력한 반면 도미니크 수도회는 이단 척결이나 신비로운 영성 추구를 엄격하게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도미니크 수도회가 유난히 인기를 끌게 돼요. - P166

참고로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도 흑사병 시대에 나왔어요.
1350년경에 쓰인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발발하면서 시골로 피신한 피렌체 젊은이들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자기들이 알고 있는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 P173

이 책 서문에는 당시 흑사병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하고 자세하게 실려 있습니다. 보카치오는 흑사병 때문에 "피렌체도시 자체가 거대한 무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절망적 표현은 당시 사람들이 남긴 기록과 거의 일치하죠.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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