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난쟁이가 나타나 나더러 춤을 추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것이 꿈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현실에서와마찬가지로 꿈속에서도 몹시 지쳐 있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피곤해서 못 추겠는데" 하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난쟁이는 그일로 그다지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난쟁이는 혼자서 춤을 추었다. - P133

"북쪽 나라에서 왔어." 난쟁이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멋대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북쪽사람들은 아무도 춤을 추지 않아. 아무도 춤추는 법을 몰라. 춤이란 게 있는지조차 몰라. 하지만 나는 춤추고 싶었어. - P135

"이렇게 춤을 추고 싶었어. 그래서 남쪽으로 온 거야. 남쪽으로 와서 무용수가 되어 술집에서 춤을 추었어. 내 춤은 평판이좋아서 황제 앞에서도추게 되었지. 그래, 그건 물론 혁명 전의얘기지만 혁명이 일어나서 너도 알다시피 황제가 죽게 되자 난마을에서 쫓겨났어. 그래서 숲속에서 살게 된 거야." - P136

"정해져 있거든." 난쟁이는 말했다. "이제 누구도 그걸 바꿀수는 없어. 그러니까 너랑 나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 P137

그러나." 노인은 내 얼굴 앞에서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 혁명이 일어난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춤추는 난쟁이만은 아직 사람들 앞에서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얘기야. 그러니까 남들한테는 말하지마. 내 이름도 말하지 마. 알겠지?"
"알겠습니다." - P146

"혹시 시간 있으면 내일 토요일 밤에 춤추러 가지 않을래요?"
나는 꼬드겨보았다.
"내일밤은 시간이 있고 춤추러 갈 생각이지만, 당신과는 가지않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 P154

섹스, 성행위, 성교, 교합, 그 밖의 뭐라도 좋지만, 그런 말, 행위, 현상에서 내가 상상하는 것은 언제나 겨울 박물관이다. - P175

겨울 · 박물관-물론 섹스에서 겨울 박물관에 이르기까지는 적잖은 거리가 있다.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빌딩 지하를 빠져나가고, 어딘가에서 계절을 다시 보내는 등의 번거로움도 있다. 그러나 그런 번거로움은 처음 몇 번뿐이고, 그 의식 회로의 코스를 한번 숙달하면 누구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 박물관에 도달할 수 있다. - P175

2. 헤르만 괴링 요새 1983
헤르만 괴링은 베를린 언덕을 파내어 거대한 요새를 구축하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말 그대로 언덕을 통째로 파내어 그 내부를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발라버렸다. - P181

그러나 1945년 봄 러시아군이 계절의 마지막 블리자드 같은모습으로 베를린 시가지에 쳐들어왔을 때, 헤르만 괴링 요새는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지하도를 화염 방사로 태우고, 고성능 폭탄을 장치해요새의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려했다. 그러나 요새는 소멸되지 않았다. 콘크리트 벽에 금이갔을 뿐이다. - P182

"여기 좀 보세요." 그가 그런 탄환 자국 하나를 가리킨다. "러시아군과 독일군의 탄환은 금방 구분할 수 있죠. 마치 벽을 깨부술 듯이 예리한 모양이 독일군 탄환이고, 쑥 들어가 있는 것이러시아군의 것이에요. 생긴 것부터 이렇게 달라요, 유노." - P183

그녀는 거대한 페니스를 찬양하는 듯한모습으로 맥주잔을 끌어안고 우리 테이블로 가져왔다. - P184

나는 혼자 프리드리히 슈트라세를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면서,
1945년 봄에 헤르만 괴링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상상해본다. 그러나 1945년 봄 천년왕국의 원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런 건 결국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가 사랑했던 아름다운 하인켈 117 폭격기 편대는 마치 전쟁 그 자체의 시체처럼, 우크라이나 황야에 수백 개의 흰 뼈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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