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표현을 못하겠어." 그녀는 말했다. "요즘 계속 그래. 정말말을 잘 못하겠어. 무슨 얘길 하려고 하면 항상 엉뚱한 말만 떠올라. 엉뚱하거나, 완전히 반대거나. 그래서 그걸 고치려고 하면이상하게 더 혼란스러워져서 엉뚱한 말이 나오는 거야. 그러다보면 처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잊어버려. 마치내 몸이 두 개로 나뉘어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야. 한가운데 아주 굵은 전봇대가 서 있고, 그 주변을 빙글빙글돌면서 술래잡기를 하는 거야. 제대로 된 말은 언제나 또하나의내가 갖고 있고, 나는 절대로 쫓아가질 못해." - P25
수업을 빼먹고 당구장이나 가는 고등학생이라면 자살을 해도 별로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 - P29
그러나 내 안에 무언지 모를 부연 공기 같은 것이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공기는 또렷하고 단순한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나는 그 형태를 말로 바꿀 수 있다. 이런 말이다. - P29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 P29
나는 그때까지 죽음이란 것을 타인에게서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죽음은 언젠가 확실히 우리를 붙잡는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죽음이 우리를 붙잡는 그날까지 우리는 죽음에 붙잡히지 않는 것이다‘라고 지극히 정상적이고 논리적인 생각 같았다. 삶은 이쪽에 있고, 죽음은 저쪽에있다. - P30
그러나 친구가 죽어버린 그날 밤을 경계로 나는 더는 죽음을그렇게 단순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다. 죽음은 이미 내 안에 있다. 그리고 나는 도저히 그것을 잊어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열일곱 살이었던 5월의 밤에 내 친구를 붙잡은 죽음은, 그날 밤 나까지 붙잡았기 때문이다. - P30
플라타너스 잎을 밟을 때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찾고 있는 것은 내 팔이 아니라 누군가의 팔이었다. 그녀가 찾고있는 것은 내 체온이 아니라 누군가의 체온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 P32
나는 그녀의 이 편지를 몇백 번이나 읽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한없이 슬퍼졌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내 눈을 말끄러미 바라볼 때 드는 느낌과도 같은, 어찌할 바 모르는 슬픔이었다. 나는그런 기분을 어디로 가져갈 수도, 어디에다 넣어둘 수도 없었다. 그것은 바람처럼 윤곽도 없고 무게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몸에걸칠 수조차 없었다. 풍경이 내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그들이하는 말들은 내 귀까지 닿지 않았다. - P42
반딧불이가 사라진 후에도 그 빛의 궤적은 내 안에 오랫동안머물러 있었다. 감은 눈의 두터운 어둠 속에서, 그 약하디약한빛은 마치 갈 곳을 잃은 영혼처럼 언제까지고 떠돌고 있었다. - P47
나는 몇 번이나 그런 어둠 속에 가만히 손을 뻗어보았다.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그 작은 빛은, 언제나 내 손가락조금 앞에 있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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