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인걸, 이건 꽤 위험한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응, 이래서 번듯하게 사는 사람들은 버스를 타지 않는구나! - P71

솔직히 고백한다면 나는 확고하기보다는 오히려 흐느적거리는 인간이며, 항구적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인간이며, 정확하다기보다는 부정확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여행‘이지 ‘다른 사람의 여행‘이 아니다. 나에게는 누군가에게 뭔가를강요할 권리도 자격도 없다. - P78

게다가 사물의 인상이라는 것은언제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버릴 수도있다. ‘아카풀코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 - P78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환상을 좇아 어딘가로 가서 그 환상을 손에 넣는 것이다. 그들은 그 환상을 얻기 위해 적잖은 돈을 쓰기도 하고 시간을 들이기도 한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돈이고 시간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그 환상을 손에 넣을 정당한 권리가 있다. - P78

하지만 다이버들의 실제 모습을 바로 가까이에서 보고 내가실망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때 순간적으로 ‘이런 건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 장면은 분명히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영화라는 것은 현실의 일관성보다는 환상의 일관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 P84

나중에는 아무래도 귀찮아져서 그냥 수돗물을 사용했다. 될대로 돼라, 배탈나려면 나라지 뭐, 하고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다행히도 나는 별탈이 없었다. 물론 마시는 물만은 생수를 썼지만. - P85

열흘 동안 원인 모를 식중독과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멕시코 노래, 자동 소총을 든 용감한 젊은이들과 냉방 장치가 고장난 버스, 아무리 걷어차도(나는 정말로 걷어찼다) 꼼짝달싹도 않는코끼리처럼 뻔뻔스런 새치기 장사꾼 아줌마를 견뎌내면서 혼자 멕시코를 여행해보고 새삼스레 절실히 느낀 것은, 여행이란근본적으로 피곤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내가 자주 여행을 해보고 나서 체득한 절대적인 진리다. - P87

여행은 피곤한 것이며, 피곤하지 않은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비참함이 끝없이이어지고, 예상했던 일이 빗나간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 P87

나는 왜 피곤을 찾아서 일부러 멕시코까지 다녀와야만 했던가? "왜냐하면 그런 피곤은 멕시코에서밖에 얻어낼 수 없는종류의 피곤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나는 대답하겠다. - P90

이상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물건을 한 가지씩 잃어버릴때마다, 설사를 한 번 할 때마다, 시간에 늦어 버스를 한 대 놓칠 때마다, 그리고 아주머니들이 새치기를 할 때마다, 내 마음속엔 멕시코란 나라가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들었다. 농담이 아니다. 독일에는 독일 나름대로의 피곤이 있고, 인도에는 인도, 뉴저지에는 뉴저지 나름대로의 피곤이 있다. 하지만 멕시코의 피곤은 멕시코에서밖에 얻을 수 없는 총류의 피곤인 것이다. - P91

이건 마치 마오쩌둥의 말과 같다고 문득 생각했다. "피곤은피곤으로 극복해내야만 한다. 피곤을 극복해내는 건 피곤 이외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 - P91

"해가 지고 나면 절대로 운전을 해선 안 됩니다. 아시겠어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묵을 곳을 찾아두세요." - P95

흡혈귀가 나오는 트란실바니아도 아닌데 해진 뒤에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문제는 치안이었다.
밤만 되면 치안 상태가 아주 나빠진다는 것이다. 흡혈귀는 아니지만 대신 강도가 나온다. 하긴, 흡혈귀나 강도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 P95

아무튼 그렇듯 끝없이 나타나는 토페와 패인 구멍에 계속시달리면서 멕시코를 이동했다. 우리가 밤에 차를 몰지 않았던건 어쩌면 무장 강도의 공포보다는 패인 구멍과 토페에 너무나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낮에도 노면 상태가잘 보이지 않는데, 어두워지면 최악일 수밖에 없다. - P99

이 지역에 스페인의 콘키스타도르(침략자)가 쳐들어온 것은1523년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원주민들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그 토지를 몰수해서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려 그 토지를 경작했다. 원주민들은 그때까지 살아왔던 마을로부터 좁은 산지 사이의 정착지로 강제이주당하고, 거기서 병사들의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살았다.
강제로 기독교로 개종당하고, 무거운 세금을 물어야 했다. - P102

원주민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혹사당했는지는 그 인구의 급격한 감소만 보더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스페인인이 땅을 정복했을 때 치아파스에 살던 원주민의 수는 약 35만명이었으나 1600년에는 그 수가 9만 5,000명으로 대폭 줄었다. 스페인인이 구대륙에서 옮겨 온 전염병도 인구 감소의 주된 원인 중 하나이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너무나 극심한 인구감소였다. 원주민들이 얼마나 ‘소모품‘으로 다루어졌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P102

원주민들의 편을 들어주었던 사람들은 바르톨로메데 라스카사스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원주민들을 보호하고, 스페인 본국에 그들의 궁핍한 처지를 호소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노예 제도의 폐지를 실현시킬 수 있었다. - P102

내가 이 주의 내력을 이렇게 길게 쓴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는 이 지역을 여행하면서 거기에 배어 있는 사물의 의미와 상황을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치아파스는 역사에 짓밟히고, 무력에 의해 침략당한 땅이다. 그곳은 가난한 땅이요 모순과 비애로 가득 찬 땅이다. 한 발자국만 들여놓고 보면 여행자는 그런 환경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수가 있다. 그 빈곤은 극단적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 P104

하지만 그런 심각한 문제를 넘어서, 이 지역에는 뭔가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는 것이 있는 듯하다. 거기에는 슬픔속에 아름다움이 있고, 치열함 속에 고요함이 있으며, 가난 속에 포근함이 있다. - P105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멕시코의 도시는 대체로 두 종류로 나눌수 있다. ‘소란스러운 도시‘와 ‘한적한 도시‘가 그것이다. 그 중간은 거의 없다. 하지만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는 소란스럽지도 않고 한적하다고도 할 수 없는 묘한 도시다. 인구는약 5만, 살기엔 꼭 적절한 규모의 도시다. 산책을 하는 데도 지루하지 않고, 느낌이 좋은 레스토랑이나 커피 하우스 같은 곳도 있다. 한 달쯤 이곳에 있으면 멋있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든다. - P107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들을 매몰시킨 역사라는 것은병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역사성의 몇 가지 가설들 중 한 가지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들을 망각한 공인된 역사(우리가 학교교과서에서 배우고, 지식으로 얻는 일반적인 역사)와는 별도로, 그들의눈을 통해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는 ‘또 하나의 역사‘가 동시에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 P111

미국에서 살아보면 기분이 좋고 나쁜 것과는 관계없이, 역시 나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언제나 있었다. 원래의 장소가 아닌 데서 살고 있다는 생각.
그것은 사회적으로, 인종적으로 어떠냐 하는 문제 이전의 일이다. - P122

이 마을 아이들은 순박한 편이다. 관광객을 봐도 그다지 집요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곳에서 한 아이를 만났는데 눈에 띄게 예쁜, 여덟 살쯤 된 여자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에게서천으로 만든 가방을 하나 샀다. 가방 자체도 비교적 예쁘게만들어져 있었지만, 그 여자 아이가 뛰어나게 예뻤던 것도 가방을 사게 된 큰 요인이었다. - P128

확실히 어느 세계에서나 미인은득을 본다고 생각한다. - P128

우동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가게 안이 너무 좁았다) 돌 위에걸터앉아 후루룩 후루룩 우동을 먹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시간이었다. 날씨도 좋고 우동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아침부터 돌 위에 걸터앉아서 우동을 정신없이 먹고 있으니, 점점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내 알바  아니다‘라는 기분이드는 것이 아주 이상했다. - P149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동이라는음식에는 뭐랄까, 인간의 지적 욕망을 마모시키는 요소가 들어 있는 것 같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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