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아나톨리아 고원에서의 체험이 너무나도 강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새파란 지중해를 보면서 무심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뭔가를 상실한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닿는 것들로부터 터키가 터키여야 하는 의미가 선명하게 전해져 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에게 해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독일인 관광객밖에 눈에띄지 않았다. - P207

카라데니즈- 터키어인 이 말은 문자 그대로 ‘검은 바다‘다.
에게 해가 ‘흰 바다‘ 라고 불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흑해는 어디까지나 ‘검은 바다‘ 인 것이다. - P208

왜 검은 바다라고 불리는지는 실제로 가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의미에서 검은 바다였다. - P208

그럼 이란까지 오지 그래. 좋은 곳이야. 전쟁? 괜찮아. 끝났어. 이제 평화롭다고, 여권이 없어도 쉽게 들어갈 수도 있고 말이야.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좋은 곳이야. - P235

여성이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입을 크게 벌리고 웃거나 피부를 노출하는행동은-일본 여자들이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행동은-터키에서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인 것이다. 마쓰무라 씨가한 여성의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심하게 저항했다. 결국 어디에선가 남편까지 뛰쳐나와 "여보, 뭐가 어때서 그래. 사진 정도는찍게 해주라고"라며 설득을 해도(터키인들이란 정말 친절하다) 결코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상당히 완고한 생각을 가진 여성이었던 것 같다. - P244

구석 쪽에는 유원지를 관리하는 일가가 사는 듯한 텐트가 있었다. 안에서는 텔레비전을 틀어놓았는지 푸른빛이 깜박깜박 흔들리고 있었다. 음식을 만드는 냄새도 났다. 텐트 주위에는 닭들이 목적지도 없이 신경질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필이면이런 곳에서 닭으로 태어난다는 게 대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해봤자 어쩔 수 없겠지만. - P247

호텔에는 종업원이 쉬는 방은 없는지 청년은 밤이 되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아침에 다시 돌아온다. 그것은 상관없지만 문제는 그가 돌아갈 때 밖에서 입구 문을 잠근다는 것이다. 튼튼한문에 튼튼한 열쇠로 말이다. 그 덕분에 숙박하는 손님들은 밤 열시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는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갈수 없다. - P248

결국 우리는 두 시간이 지나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나 일요일 아침에 흑해를 보면서 느긋하게 햇볕을 쬐다는 것은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호파를 마지막으로 앞으로 한참 동안은 바다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몇 주일 뒤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 보게 되는 바다는 지중해다. - P254

반 고양이는 반 호숫가에 사는 특별한 고양이를 말한다. 이 고양이는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흰색 고양이지만 실은 수영을 굉장히 좋아한다. 물이 있으면 어쨌든 헤엄치고 본다. 상당히 유별난 녀석이다.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 눈의 색깔이 다르다. 이 고양이는 반 호수 근처에서만 사는데 - P256

(결론부터 말하면 반 호수에서 수영을할 수는 있었다. 정말 기묘한 분위기의 호수였다. 그 옛날 화학 실험실에서맡았던 약품 냄새 같은 것이 났다. 아마도 무슨 나트륨의 냄새일 것이다.
수질도 조금 미끈거렸다. 하지만 염분이 높은 탓인지 수영을 하기에는 매우 쉬웠다. 삼십 분 정도 수영을 했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물은 독특한 터퀴스 블루turquoise blue 색깔로 매우 깨끗하다). - P257

로 한다. 하지만 이곳은 상당히 엉터리 호텔로(참고로 호텔 이름은 ‘아크다마르‘ 라고 한다) 우리가  차에서  짐을 내리자 프런트 담당이
"두 분이 묵으신다면 침대 추가 사용료 1,600엔을 더 내셔야 하는데요"라고 말을 꺼냈다. 지금 장난하는 거냐. 아까 방을 봤을때는 침대가 양쪽 방에 하나씩 있지 않았느냐? 아니, 그건 치우는 걸 깜빡해서.…………. 라며 억지를 부린다. 하지만 너무나 화가나서 "됐다, 다른 호텔로 가겠다"라고 하자 "알겠습니다. 특별히호의로 서비스해드리겠습니다" 라고 한다. 대체 뭐가 호의라는거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은 방을 잡고 욕조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서 맥주를 꿀꺽꿀꺽 마신다. 천국이 따로 없다. - P263

이 이야기의 교훈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은 앞으로 반에 가시는 분들을 위해 결론 비슷한 것을 말하자면, 반에 있는 호텔 프런트 직원들은 반드시 어딘가 융단 가게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만난 프런트 직원들 역시 반드시 나에게 융단 가게의 명함을 주었다. 이 동네에서 그곳이 제일 양심적이고 신용할 수 있는 융단 가게이니 꼭 가보세요,
라며 그들은 매우 열심히 권했다. 같은 호텔이라 해도 사람에 따라 제휴하고 있는 융단 가게가 다르다. 아무리 봐도 그들은 그리열심히 호텔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융단 가게 알선만은 정말 놀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호텔 일이 부업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일급 호텔이라고는 해도 변기의 물은 밤새도록 새고, 방에 전화는 없고, 뜨거운 물은 거의 나오지 않았고, 직원의 서비스는 나쁘고, 매우 지독한 곳이었다. - P272

마네키네코‘ ‘복을 부르는 고양이‘란 뜻. 일본의 가게는 한쪽 손을 들고 있는 고양이 인형을 두고 있는 곳이 많은데 그 인형을 가리켜 ‘마네키네코‘라고 부름다. - P273

이 동네의 사람들은 관광객만 보면 융단을 팔아야 된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는 것 같았다. - P273

그리고 아쉽게도 반 고양이가 헤엄을 치는 모습은 끝내 볼 수 없었다. - P273

"하카리 마을은 피해 가는 게 최고다. 이 마을 인구의 반은두려움에 떨면서 길거리의 더러운 폐가에 틀어박혀 있고 나머지반은 정부 관리를 죽이는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이곳에 근무하는 정부 관리는 다른 지방에서 뭔가 문제를 일으켜서 이곳으로내쫓긴 사람들뿐이다." - P276

나는 이것이 과장이 아닌가 하고 하카리에 가보았는데 전혀과장이 아니었다. 물론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을을 뒤덮고 있는 분위기는 정말 그 내용 그대로였다. - P276

터키인을 비방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터키인들이 괜찮다는 것치고 실제로 괜찮은 경우는 별로 없다. 물론 그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끔너무나 희망적인 견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을 뿐인 것이다.  - P279

즉 "I hope that it is so.(그랬으면 좋겠네요)"가 자기도 모르게
"It has to be so.(그래야 해요)"가 되고 결국에는 "It sure is so.(분명코그래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 P279

개들은 모두 크고 흉폭하다. 반쯤은 들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만약 이 개들의 습격을 받는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걱정될 정도였다. 나는 가끔 차에서내려조깅을 하고 싶었지만개들의 습격이 무서워 터키에서는 단 한 번도 달리지 못했다.  - P284

실은 몇 년 전에 터키 정부가 전국적으로 들개를 사냥하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으나 서구의 동물 애호 단체의 항의 때문에 포기했다고 한다. 터키에서는 실제로 개에게 잡아먹히는 사람도많다고 한다. - P284

카페의 텔레비전에서는 서울 올림픽 중계를 하고 있었다. 레슬링이다. 사람들 몇 명이 테이블에 앉아 물끄러미 그 흑백 화면을 보고 있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 P293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기둥에 가려진 테이블에 앉아 차이를 주문한다. 차이는 없다고 한다. 그럼 주스를 달라고 한다. 그리고 치즈파이를 주문한다. 얼마 뒤에 차이와 치즈파이가 나왔다. 이유를 알 수가 없다. - P293

이 마을에서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행위라는 것을  좀처럼 찾아보기가힘들다. 그 대신 목적이 없는 행위라면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다. - P297

하지만 이 길은 실제로는 최고의 프라블럼들로 가득 찬 길이었다. 길 자체도 산을 넘어가는 상당히 험한 길이었지만 문제는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길은 쿠르드인 산악 무장 게릴라가 출몰하는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물론 경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 P300

그리고 이라크군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려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특히 이 당시에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터키 정부가 국경을 넘는 쿠르드인과 외국인 저널리스트의 접촉을 완전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동정하고아무리 사정을 잘 몰랐다고는 해도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너무나 미안하게 생각한다.
- P302

하지만 그건 그렇다고 해도 그 당시 광경을 상상해본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산길에서 무장한 쿠르드인 무리에게 차가 멈춰 세워지고, 주위를 빙 둘러싸인 채 눈앞에서 갑자기 눈의 흰자위를 뒤집어 보이는 꼴을 당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서운 경험이었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다. - P302

한편 여행 안내서를 읽고 그 정보 중에서 어떤 것이 도움이 되고 어떤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처음 가는 나라라면(생각해보면 대부분 처음 가는 나라이기때문에 여행 안내서를 읽을 것이겠지만) 이 판단은 더 어려워진다. - P303

어쨌든 장기간에 걸쳐 터키를 여행하려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당신이 담배를 피우든 피우지 않든 반드시 말보로 한보루 사가기를 권한다. 이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 P304

"시가라 sgara boreg, 터키식 컬련?" 라고 말한 뒤 활짝 웃으며 말보로 한 개비내밀면 대부분 쉽게 해결된다. 그야말로 마법의 담배다. "말보로가 아니면 안 돼? 윈스턴은?" 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대답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말보로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보로라는 것은 아마도 하나의 상징인것이다. 아마도.
Come to Marlboro country. - P305

"터키에서 신상에 관련된 사건을 일으키면 이유와는 상관없이 끝이니까 조심하세요" 라는 관계자의 충고가 귀에 선하다. - P311

나는 터키를 3주 동안돌았지만 냉수기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왜 이런 가축우리 같은 호텔에 냉수기 같은 물건이 있는지 나로서는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히 있었다.  - P322

나는 굉장히 목이 말랐고 이 냉수기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곳에 놓여 있던 잔으로 차가운 물 두 컵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비극적이라고 할 만한 설사를겪어야 했다. - P322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이곳의 샤워기는 빨간 꼭지가 찬물이고파란 꼭지가 뜨거운 물이다. 덕분에 나는 마지막 순간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계속 화를 내면서 찬물에 샤워를 하고 있었다). - P326

어쨌거나 지독한 곳이다. 내가 산책을 하러 나가자 근처에 있던 아저씨가 "당신은 네덜란드사람인가?"라고 물어왔다. 대체 나의 어디가 네덜란드 사람처럼보이는 것일까? - P327

하지만 오 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돌아온다. 그리고나를 둘러싼 뒤 다시 물끄러미 바라본다. 끈기 싸움이다. 나도고집이 센 편이라 이런 아귀들에게 질까 보냐 하고 생각한다. 아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라는 것은 인식을 기반으로 삼는 것이다. - P334

디야르바키르에서는 좋은 추억이라고는 없다.
아니, 좋은 일이 하나 있기는 했다.
전화국에 가서 공중전화에 제톤Jeton (전화용 코인)을 20엔어치넣고 일본에 전화를 했더니 원래는 십초 만에 끊겨야 하는데 고장이 나는 바람에 이십 분이나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 P340

어쨌든 터키의 전화는 제대로 연결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때는 기적이 일어나 도쿄에 있는 아내와 이십 분 동안이나 공중전화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내가 그녀를 버려두고 터키로 훌쩍 떠난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있었다.
"당신 전화 한통안했잖아요.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알기나 해요?" - P340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모르는 것이다. 호텔에 전화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지만 어쨌거나 아내와 이십분 동안 통화를 했다. "남자 둘이서 재미 보고 계시겠네"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것 봐라, 하고 나는 생각했다. - P344

‘작가적 힘‘은 무엇일까? 하루키는 여러 가지 글을 로테이션하듯번갈아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소설, 특히 장편소설만 계속 쓰다 보면, 정신적으로 산소 결핍 상태가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른 종류의 글쓰기를 통해여기저기 닫혀 있는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방 안으로 끌어들인다." - P347

하루키는 《먼 북소리》에서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귀울여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먼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들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 할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라고 긴 여행을 떠나는 의미를 부여했었다. - P349

그리고 이 책에서 하루키는 그리스와 터키의 변방을 여행하게된 계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책에서 아토스에 관한 얘기를 읽은 후로 어떻게 해서든 꼭한 번 이곳에 와보고 싶었다.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살아가고 있는지, 실제 내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이다." - P349

"......나는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강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왜그런지는 나로서도 잘 알 수가 없다. 나를 끌어당긴 것은 그곳 공기의 질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이상스럽게 느껴지는 공기의 질적인 차이는 다른 어느 곳의 공기와도 같지 않았다." - P350

하루키는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자한 것일까? 아마도 그리스정교의 수도원을 돌며 느낀 성聖과, 터키 사람들의 생활에서본속을 통해 얻은 인생의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 P350

전편을 통해서 하루키의 여행은 각기 다른 특이한 세계와 환경에 젖어, 사색에 잠겨, 새로운 소설을 탄생시킬 구상을 가다듬는기초가 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루키가 찾아갔던 그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을 상상력을 구사하여함께 재체험할 수 있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깊고 진지하게 언어와문학의 참맛도 음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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