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교 전반에 관해 그다지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그리스정교라는 종교는 가끔 이론을 초월한 동방적인 기운을 느끼게 하는 구석이있다. 특히 계단 구석에 숨어 한밤중의 예배를 훔쳐볼 때는. - P85

삼십 분 정도 그곳에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방으로 돌아와 침대로 들어갔다. 아마 오늘도 날씨가 맑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안심이 되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수도사들의 기도 소리가 나의 귀를 부드럽게 간질여주었고 나는 곧 잠이 들었다. - P87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점이 하나 있는데요."
사진작가 마쓰무라 씨가 말한다. - P89

"저기, 수도사들 말이에요. 저렇게 형편없는 식사를 하는데도왜 살이 찔까요? 고양이들도 비쩍 말랐던데………."
그러고 보니 배가 나온 수도사를 꽤 많이 본 것 같다. 혈색도 나쁘지 않았다. - P89

식사조절과 운동은 다이어트의 기본이다. 저런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해도 여전히 살이 찐다면 다이어트 같은 것은 이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잘 모르겠다. 신의 정원, 아토스 반도의 커다란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다. 혹은 나이를 먹으면 살이 찌는 것이 이 지역 사람들의 인종적인 특징일지도 모른다. 어떤 생활을 하든 그들은 그저 체질적으로 살이 찔 수밖에 없기 때문에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어딘가에 숨어서 남몰래 영양 보충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P91

신의 정원, 아토스 반도의 커다란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다. - P91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뭘로 왔지?"라고 묻기에 "비행기" 라고 말하자 세 명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비행기래!" 라고 한다. 비행기를 탔다는 사실 하나에 감동받는 모습은 나도 처음 보는 일이다. 굉장한 곳에 왔다는 사실이 다시 실감난다. - P94

그들은 아래쪽에 잠을 자는 곳이 있는 듯했으나 점심은 도중에 임시로 지은 오두막에서 먹는 듯했다. 기둥을 세우고 온실처럼 주위에 비닐을 두르기만 한 것이다. 오두막 옆에는 샘물이 있는데 너무나 시원하고 맛있다. - P96

어서였다. 아침 일곱 시부터 열 시간 정도를 계속 걸었다는 얘기다. 고된 하루였다. 발이 아플 만도 하다. - P99

라브라에서도 변함없이 루크미와 커피와 우조 삼종세트가 나온다. 탐욕스럽게 루크미를 먹어치운다. 이달콤함이 지금에와서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행복하다. - P99

수도사들은 그 점에 익숙한 모양인지 그 틈을 타서 모두 수박을 다 먹고 있었다. 과연 프로들이다. 감동스러웠다. - P106

"하지만 이교도들이 느긋하게 수박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게 이 수도원이 존재하는 목적은 아니니까요"라고 O씨가 말한다. 듣고 보니 그도 그렇다. - P108

"무라카미 씨는 이탈리아 사람들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것 같아요" 라고 ○씨가 말한다.
그런 건 없지만 모처럼 로마에서 벗어나지 않았는가. 이런 곳까지 와서 이탈리아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 논 네베로? (내 말이 틀린가?) - P111

하지만 백 년밖에 지나지 않아서인지 퇴색되고 균열이 생기기는했지만 아직 선명했다. 이것을 보고 있자니 세상은 실로 온갖 종류의 수난으로 가득 차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 P112

아토스의 산정 부근이 기분 나쁜 검은색의 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묵직하고 둔중해 보이는 구름이다. 그리고 그 구름 아래는 회색의그림자로 희미해져 있다. 아무래도 산 위에는 비가 내리고 있는모양이다. 그것도 상당히 지독한 비가 다시 날씨가 변덕스러워졌다. 큰일이군. 어쩌면 여기에도 비가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자마자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한다. 당황해서 서둘러 일어나 걷기 시작했지만 이, 삼십 분이 지나자 본격적으로 장대비가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걷기도 힘든 길인데 비까지 내리다니,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흠뻑 젖어버렸다. 그제와 똑같은 상황이다. - P123

하지만 배는 오지 않았다. - P127

그래서 우리는 예상외로 나흘째 되는 밤을 캅소카리비아의 스키테에서 보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곳은 우리가경험한 것 중에서 가장 거칠고 엄격한 수도원이었다. - P128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 이상한 것, 기막힌 일들과 조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 P129

우리는 우선 영어가 통하는 스키테의 수도사에게 "어째서 배가 오지 않았는가?"를 물어보았다. 상황은 그의 설명에 의하면-단순하고도 명백했다. 첫째, 우리가 기다리던 선착장이 잘못되었다. 보트가 오는 곳은 산 하나 건너편에 있다. 둘째, 그러나 상심하지 말라. 어차피 이런 날씨에는 배가 오지 않는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배는 쉽게 결항한다. 셋째, 이 계절에는 배가이틀에 한 번 오기 때문에 모레까지 오지 않을 것이고 날씨에 따라 또 오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넷째, 무엇보다 이성적인 해결책은 내일 아기아 안나까지 걸어가서 그곳에서 다프니로 가는보트를 타는 것이다. 반도 서쪽에 있는 아기아 안나까지 가면 매일 아침 배가 한 번씩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 P129

나로서는 이 광경을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콩 수프와 곰팡이빵으로 살아가는 고양이가 이 넓은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고양이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내가 기르던 고양이는 가다랑어 포를 얹은 밥도 잘 먹지 않았다. 정말로 세상은 넓은 곳이다. 캅소카리비아에서 태어나 자란 고양이에게 음식이란바로 곰팡이 빵과 식초를 넣은 콩 수프인 것이다. 고양이는 모르것이다. - P133

고양이는 분명 ‘아-맛있다. 
오늘도 곰팡이 빵을 먹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
살아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라고 생각하면서 곰팡이 빵을 먹고 있는 것일 게다. - P134

그 나름대로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인생은 아니다. 이런 곳에 하루 더 처박혀 다시 곰팡이 빵 따위를먹게 된다면 우리는 정말 죽어버릴 것이다. 내일은 가능한 한 빨리 아기아 안나로 도망가야지. - P134

어쩌면 숙박을 담당하던 수도사도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 탐탁지 않아서 오두막을 태우는 대신(일일이 태울 수는없는 일이어서) 곰팡이 빵을 식사로 내놓아 조금이라도 빨리 우리를 내쫓아버리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의 작전은 성공한 셈이다. - P136

길에서 만난 한 나이 지긋한 수도사는 우리를 향해 "다음에 올 때는 마음을 바꿔서 정교로 개종을한 뒤에 오시게"라고 진지하게 충고했다. - P137

도중에 몇 명인가 수도사들과 스쳐지나갔지만 여기까지 오다보니 이제 승려인지 거지인지 큼직한 원숭이인지 가까이 올 때까지는 구별할 수 없다. 옷은 낡을 대로 낡았고 수염과 머리는제멋대로 자라 있었으며 눈만 뒤룩뒤룩거릴 뿐이다. - P134

레몬을 언제나 가지고 다닐 것! 이것이여름에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학습한 교훈 가운데 하나다. - P138

그런 식으로 약 세 시간 반 정도를 계속 걸었다. 신발 사이즈가 좀 맞지 않아서 발에 잡혔던 물집 두 개가 터지고 발톱이 흔들린다. 아프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하겠지만 마지막에 가서는아픔을 느끼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어쨌거나 걸을 수밖에 없다. - P139

나는 달리기를 해왔기 때문에 웬만한 체력 소모에는 어느 정도익숙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이 길은 힘들었다. 오늘까지 4일간오로지 계속 걷기만 했다. 일 때문이라고는 해도 도시에서 자란0 씨는 정말 불쌍해 보였다. - P139

다프니에서 우리는 다시 긴 바지로 갈아입는다. 신의정원에서 반바지는 불경스러운 것이다. 다프니에서는 간단한 허가증과 짐을 검사한다. 수도원의 보물 같은 것을 가지고 나오지않았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다지 철저하지는 않다.  - P144

체류 기한을 넘긴 것에 대해서도 이렇다 말이 없다. 서류를 훑어보더니 오케이, 한마디로 끝이다. - P144

그곳의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조용하고, 농밀한 확신을 갖고 살고 있다. 그곳의 음식은 단순하지만 생생할 정도로 실감 있는 맛으로 가득했다. 고양이조차 곰팡이가 핀 빵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 P146

그렇다면 정말 어느 쪽이 현실 세계인가? - P1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