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미의 장례는 구립장례식장에서 치를 예정이었다. 그저께 병리 해부한 시신이 어제 반송되어 가족만 모여 경야"를 치렀다고 들었다.
* 장례를 치르기 전, 친족끼리 곁에서 밤새도록 지키는 것.

시즈카처럼 여생이 짧아지면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도 남의 일 같지 않게 된다. 장례식장의 규모, 예상 조문객, 어느 스님에게 경을 부탁할지, 답례품으로는 무엇이 어울릴지 등을 상상하는 동안 시간이훌쩍 흘러 버린다.

단 음울한 감상과는 거리가 멀다. 장례식은 긴 인생에서 주역이 되는 마지막 기회다. 할 수 있다면 남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기획하고 싶지 않은가. 장송해 주는 사람들이 봄날처럼 따뜻하게, 그리고 축제처럼 즐겨 주길 바란다. 이것이 시즈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장례식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관에서 잠든 후루미는 자신의 장례식을 어떻게 보고 있을 텐가. 후회가 남는 인생이었을까, 아니면 웃으며 잠들 수 있는 인생이었을까. 공장을 접고 빚이 남아 있었다고 해서 꼭 후회할 거라는 법도 없다. 사람의 만족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존재하는 것이니까.

"오늘 같은 날에는 검은색으로 칠한다든가 하는 배려를 하실순없나요?"
"TPO*를 생각하면 결혼식용 흰색이나 히나마쓰리용** 핑크색 휠체어를 준비해야지."
*시간(time), 장소(place), 경우(occasion)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옷차림의 기본원칙을 의미한다.

**여자아이의 건강한 성장과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3월 3일에치르는 일본 전통 축제.

부친이 자네에게 가업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한 것도  아들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었어. 재무상태가  엉망인 회사를 아들에게 부담 지우고 싶지 않았던 거지.  그러니 아버지를 너무 원망하진 마. 보내드릴 때만큼은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리라고

"그거야말로 나와는 안 어울려. 참회는 무슨,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도 메롱을 해 볼까 계획 중이라고."

"배를 꿰맬 때, 그 입도 함께 꿰맸으면 좋았겠네요."

오리가 파를 짊어지고 온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하는 말일 것이다. 신문 보도 직후라서 미기와가 왜찾아왔는지는 대강 짐작이 간다. 도대체 겐타로가사건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건지, 아니면 사건이 겐타로에게 다가가는 건지

* 오리가 파를 짊어지고 옴으로써 오리요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가 갖춰지는 매우 편한 상황을 뜻하는 일본 속담. 즉 상대가 좋은 일을 들고 와 본인이 편해지는 상황을 뜻한다.

여기서 시즈카는 로카르의 교환법칙을 떠올렸다.
서로 다른 물질이 접촉하는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접촉 사실을 가리키는 증거를 남긴다는 법칙이다.

재능이 좌우하는 세계에서는 관을 얻는 것이 비약의 조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재능은 외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 보증할 만한 그 분야의 무언가가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위한 것, 남을 위한 것이라면 법률 따위지키지 않아도 돼. 대체로 법률은 악행을 제지하는것이지 선행을 독려하는 건 아니야. ‘
법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시즈카 자신도 뼈저리게 알고 있지만 겐타로에게 지적받자 어쩐지 부아가 치밀었다.

제1게이힌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향하던 가베무라의 자동차는 하마마쓰초 1번지에 접어들었다. 왼쪽에는 신칸선의 고가가, 그 맞은편에는 하마리큐*일부도 보일 듯 말 듯한다. 그 주변 일대는 비즈니스거리이지만 상업빌딩의 틈새에 가정집도 들어서 있다. 오늘날의 제1게이힌 도로는 원래 도카이도**의요점으로 에도 시대에는 조카마치***로서 번성한 장소다. 그렇게 생각하면 번화한 현재의 모습에도 친근감이 느껴진다.

* 도쿄에 있는 옛 별궁.
**에도 시대 교토와 에도를 잇는 교통로.
***에도 시대에 형성된 계획도시로, 무사와 상공업자가 모여 성의 방위시설이자 행정도시, 상업도시의 역할을 했다.

늙는다는 것은 매일매일 무언가를 내려놓는 과정이다. 오랜 친구들, 체득한 기술, 지식, 그리고 기억.
본인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소중한 것이 손가락 사이로 주르르 흘러내린다. 면허증 반납을 거부하는 사람은 그런 일상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들의 생각은 필요할 때도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어. 눈앞에서 젊은이가 늙어빠진 노인 두 명에게 고개를 숙여. 의료를 보고 행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음이니라."

"아이들에게 돌진하기 직전에 핸들을 꺾었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렇죠. 하지만 요즘처럼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고가 다수 발생하면 이런 호평도 악평에 묻히기 쉽습니다. 남는건 고령 운전자에 대한 책임 전가와 의분의 탈을 쓴 울분 해소뿐이고요."

시즈카는 바로 그렇게 결론 지었다. 화장터로 향하고 있던 영구차가 다시 돌아온다. 이런 비합리를 해치우는 건그 규격 밖의 영감 정도다.

화장터의 노후화는 지진대책의 측면에서도 지자체에는 골치 아픈 문제야. 우리 회사의 영업부 정보에 의하면화장터 한두 곳은 곧 멈출 거야. 원래 멈추지 않으면 위험한 화장로가 아직도 많이 가동 중이거든. 이걸로 성공적으-로 보수 공사 수주가 날아 들어오면 그거야말로 야케부토리*란 거지. 하하하하.
시즈카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 화재 후, 살림이나 사업이 더욱 번창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

무엇이 옛날 솜씨란 건가. 판사 시절에는 이런 막 나가는 짓을 한 적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시즈카가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된 것은 겐타로에게 안 좋은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훌륭한 반격이든 공갈이든 내뱉는 순간에는 상쾌해도 곧 부메랑처럼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내뱉는 기세가 강하면 강한 만큼 수중에 되돌아올 때의 위력도 크다.

"어차피 사람은 죽으면 재가 되거나 흙으로 돌아가거나 물고기 먹이가 돼. 중요한 건 시신이 어떻게 되는지가 아니라 그 녀석이 생전에 무엇을 남겼는가야 시즈카 씨 동료였던 다지마라는 판사는 정당한 재판을 해 왔겠지. 그렇다면 그걸로 괜찮지 않아?"

니시고리의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이다. 시즈카나 겐타로 같은 노인이 되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애정과 돈을 같은 선상에 두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족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시키려면 아무래도 돈 이야기가 나오는 건 피할 수 없다. 무급으로 환자의 오물에 젖고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마더 테레사가 될 것이다.

"감정만으로는 길을 잘못 들고 논리만으로는 추진력이 부족하게 돼."
그럴싸한 말을 하지만 겐타로 자신도 마음먹은 대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다만 겐타로에게는 경영자로서의 판단력이 있어서 길을 잘못 들지 않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 영감은 길을 잘못 들어도 목적지에 도착할 것만 같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인생이었을까. 마지막 순간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웃으며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을까

사적인 것보다는 공적인 것. 세간보다는 법조계를우선하는 삶의 방식이 판사로서 과연 옳을까, 어떨까.
그것은 분명 아무도 모른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당사자가 웃으며 죽을 수 있느냐 아니냐만이 문제일것이다.

"그래. 그건 올바른 판결이었어."
"올바른 일을 했는데 어째서 미움받아야 하는 거야?"
"세상은 옳고 그른 것만으로 나눠질 만큼 단순하지 않아서 그래."

"자신이 정한 자신의 규칙을 따라. 간단하지만 꽤어려워. 어려우니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받는 거고."
"알 것 같아."

"남을 저주하면 자기에게도 재앙이 돌아와. 남에게 못된 짓을 하면 그대로 복수 당하지. 그런 걸 반복하는 동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마도카나 시즈카 씨와는 안 어울려."

"당신은 판결에 불복했겠지만 난 재판이란 건 공평한 데다가 죄인에게도 관대한 것 같아. 적어도 저런 말도 안 되는 사회적 제재라는 녀석보다는 나으니까."

"불운하지 않은 직업이 어디 있겠나. 누군가를 만족시키면 다른 누군가가 불만족하지. 세상사람들이처세술에 능한 사람을 질투하는 것도 다 그래서야."

"겐타로 씨가 말하니 설득력이 있네요."
"시즈카 씨가 말하면 더욱 설득력이 있지."
"왜 그럴까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관철하는 사람이니까.
뭐 그런 성격이 아니면 판사는 못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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