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로 기록되는 모든 사건은
‘화학 반응‘에 의해 좌우된다."
라이너스 폴링 노벨화학상 노벨평화상 수상 화학자

쿠푸 왕의 피라미드에서
유리 생산과 활용,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염색 위장술‘에 이르기까지
‘화학 기술‘이 세계사를 바꿨다

‘화학 지식‘은 세계사를 바꾸는 원동력이었다.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물이라 할 만하다. 이는 높이 약 139 미터(지어질 당시에는 약 147미터였으나 사람들이 석회암 외장재를 모두 뜯어가는 바람에 모양도 달라지고 높이도 줄어들었다), 각 밑변 길이 약 230미터에 평균 무게 2.6톤인 돌 230만 개로 이루어진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이 피라미드는 오늘날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으며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 탓에 외계인이 쿠푸 왕의 피라미드를 건설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마저 제기될 정도다.

에너지가 고도로 응축된, 크기가 제로에 가까운 미세한 점상태였던 것이 지름 1센티미터 정도의 ‘공간‘으로 순식간에 팽창했다. 지금으로부터 138억 년 전 어느 날의 일이다. 이 사건을 우리는 ‘인플레이션(Inflation)‘ 혹은 ‘급팽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좁은 ‘공간‘이 흔히 ‘빅뱅‘이라고 하는 대폭발을 일으킨 것은 그 직후의 일이다.

아프리카대륙 어느 숲에서 원인(人)이 출현해 두 다리로 걷는 ‘이족보행‘을 하기  시작했다. 700만 년쯤 전의 일이다. 이후 좀 더 진화한 인류인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에렉투스가 아프리카대륙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으나 절멸했다.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우리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영리한 사람‘이라는 뜻)가 등장했다(네안데르탈인은 상당 기간 동안 호모사피엔스와 공존했으나 결국 경쟁에 밀려나 도태되었다).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대륙을 떠나 전 세계로 이동한 것은 8만~5만 년 전의 일이다.

그들은 막대기를 빠른 속도로 돌에 문지르면 불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 저 열매는 먹어선 안 되지만 이 식물은 먹어도 된다는 등의 사실을 경험을 통해 학습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다양한 방식의 삶과 죽음을 겪으며 방대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나간 것이다.

140만 년 전 무렵 불 이용 가열조리가 인류를  인류답게 만들었다.
○ 구운 고기 섭취가 뇌를 크게 진화시켰다

4만 1,000년 전 무렵적색 안료 이용
‘색‘을 사용하게 되면서 진화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인류
○ 인류는 언제부터 ‘색‘을 의식적으로 사용했을까?

○ 눈으로 본 것을 사진처럼 기억하며동굴벽화로 재현해낸 고대 인류

3 만 년 전 무렵 재봉 바늘 발명
호모사피엔스를 전 세계로 진출할 수 있게 한  ‘도구 이용 능력‘
○ 북유럽 · 시베리아 등 혹한지 진출을 가능케 한 ‘재봉 바늘‘

2 만년전 무렵점토 이용
문명 태동과 발전의 가장 중요한 재료, 흙

ㅇ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토기는?

기원전 8000년 무렵 농경 시작
마을 • 도시 • 국가와 체계적인 권력 구조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다

○ 씨앗 한 톨이 1년 만에 수백 배가 되는 이치를 터득한 호모사피엔스

농경의 본질은 알곡을 먹어치우지 않고 땅에 뿌리거나 심은 다음 기다리면 수백 배 결실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지혜로운 누군가가 깨닫고  실행에 옮겼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1년을 기다리면 씨앗 한 톨이 수백 배로 늘어나는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기적을
창출해내는 시간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  지성이 자리한다.

○ 마을 · 도시 • 국가 그리고 왕과 지배체제를  탄생시킨 농경

기원전 6000년 무렵 리넨과 LINE
문명으로 나아가는 첫걸음, 식물섬유 이용

O 인류는 석기 시대에 이미 식물섬유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리넨 실을 끈으로 사용해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 건설 과정에 직선을그리는 데 리넨 실을 사용했다.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도 오래전부터 목공 작업에서 목재 등에 직선을그을 때 ‘먹통‘을 사용해왔다. 여기에서 말하는 ‘먹통‘ 이란 먹물을 먹인 아마실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직선을 그리는 도구다(오늘날에는 레이저 등을 사용한다). 이렇듯 리넨 실로 직선을 정확히 그을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리넨에서 직선의 의미가 생겨났다. ‘선‘을 의미하는 단어 ‘라인(line)‘은 이렇게 태어났다.

기원전 6000~6500 메소포타미아
기원전 3000 이집트
기원전 2600 인더스
기원전 2000 황하

기원전 4000년 무렵
금·구리 이용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인류가 가장 애용한 두 금속

○ 구리가 농기구 · 무기 재료로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기원전 4000년 무렵
빵의 탄생
‘효모를 이용한 발효 빵‘으로 수준 높은 음식문화를 누린 고대 이집트인

○ 신석기시대 사람들도 빵을 구워 먹었다고?

기원전 4000년 무렵
맥주의 탄생
세계 음료사를 바꾼 미생물, 효모 발견

● 고대 메소포타미아 · 이집트 문명에서는맥주를 급여 대신 지급했다고?

기원전 4000년 무렵
와인의 탄생
세계 음료사를 바꾼 또 하나의 위대한 알코올

Q 고대 이집트인에게 와인 제조법을 전수해준 민족은?

기원전 3000년 무렵
청동기의 이용
고대 세계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다

○ 인류 최초의 무역상품은 기원전 6500년 무렵 오늘날의 튀르키예에서 채굴한 ‘흑요석‘이라고?

기원전 3000년 무렵
유리의 이용
유리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최첨단 과학 문명도 없었다

○ 인류 역사상 최초로 유리를 발명한 이들은 메소포타미아인일까, 이집트인일까?

기원전 2800년 무렵
가장 오래된 약학서
온갖 종류의 한약을 집대성한 ‘신농본초경

○ 오늘날의 최첨단 분석 기술과 생화학 기술이 4,000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한약의 특효 비밀을 밝히다

기원전 2500년 무렵
쿠푸 왕의 피라미드
화학 지식을 이용해 가장 위대한 건축물을 탄생시킨 고대 이집트인

○ 돌 절단기 등의 도구가 없던 4,500 년 전 이집트인은피라미드 제작용 석재를 어떻게 잘랐을까?

기원전 1500년 무렵
철기의 이용
철기 기술을 가진 민족이 지배한 고대 세계

○ 우주에서 날아온 운철을 응용해 철을 생산하고 사용하기 시작한 고대 인류

ㅇ ‘이온화 경향‘을 알면 세계사가 한눈에 보인다

인류가 금속을 이용해온 역사를 ‘이온화 경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온화 경향이란 뭘까?
금속 원자가 전자를 방출해 양이온이 되려고 하는 경향을 말한다. 일테면 구리와 철, 알루미늄, 금의 이온화 경향을 살펴보면 큰 것부터 알루미늄(AI)> 철(Fe)) 구리(Cu) 금(Au)의 순서가 된다.

20세기는 ‘알루미늄의 시대‘다. 즉, 이때에 이르러 이온화 경향이 매우 큰 알루미늄 이온에 전자를 강제로 주는 ‘전기 분해‘ 기술이 발명되어 알루미늄이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
-이렇듯 인류의 금속 이용은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며 금 구리 → 철→ 알루미늄으로 이온화 경향을 거슬러 올라온 역사다.

기원전 1600 년 무렵
보라색은 제왕의 색
고대인은 왜 그토록 ‘보라색‘에 집착했나

○ 보라색 염료 1.5그램을 얻는 데 뿔고등 1만 2,000개가 필요했다는데?

강력한 권력자이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100~44 BC)는 사실상 황제나 다름없던 자신과 자신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만 보라색 염료로 물들인 토가를 입을 자격이 있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카이사르의 연인이던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여왕 전용 군함의 돛을 보라색으로 물들였다. 이렇듯 보라색은 고대로마 시대에 고귀한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색이 되었다.

귀중한 보라색 염료는 아라비아 세계를 넘어 인도,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중국까지 전래되었다. 그와 함께 보라색을 고귀한 색으로 여기는 문화도 염료와 함께 전해졌다. 

자금성(紫禁城)이나 자신전(紫宸殿)같은 건물 명칭에 보라색[紫]이 사용되고, 쇼토쿠 태자(聖德太子, 574~622)가 603년에 관위십이계(冠位十二階, 일본 최초의 위계 제도)를 제정하면서 가장 높은 지위를 보라색으로 정한 것도 그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1323 년 무렵
투탕카멘의 가면
고대부터 사람들을 매료시킨 광물, 금

○ 투탕카멘과 암모니아의 어원이 같은 이유는?

기원전 700년 무렵
올리브기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를 지탱해 준 두 가지 핵심요소 중 하나

○ 올리브 압착기를 이용해 철학자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음을 보여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

기원전 500년 무렵
철의 주물 제작
철제 농기구 · 무기로 국력을 강화해 통일국가를 건설하다

춘추시대에 철기 기술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진시황제의 전국 통일도 없었다?!

기원전 429년
세계 최초로 독가스가 사용된 전쟁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다

○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전쟁에 화학무기인 독가스를 사용한 고대 그리스인

기원전 400년 무렵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우주 만물이 원자로 구성돼 있음을 주창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o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원자 같은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그 존재를 부정했다고?

고대 그리스의 압데라라는 도시에 데모크리토스(Démókritos, c. 460~c. 370 BC)라는 유쾌한 성격의 괴짜 철학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데모크리토스는 스승 레우키포스(Leúkippos, ?~?)와 함께 바닷가에 산책을 나갔다. 그곳에서 그는 머릿속에 한 가지 매우 흥미롭고도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기원전 400년무렵의 상황이다. "만물은 이 모래처럼 아주 작은 뭔가가 모여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더는 나눌 수 없는 궁극의 입자(원자)가 존재하며, 그 입자가 만물을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획기적이고도 위대한발상이었다. 그는 그 궁극의 입자를 ‘아톰(atom, 원자)‘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리스어에서 ‘~하지 않다‘라는 부정적 의미의 접두어 ‘아(a)‘와 ‘자르다‘라는 의미의 ‘템네인(temnein)‘으로 구성된 ‘아토모스(atomos, "더는 자를 수 없다‘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어휘다.
어느 날, 데모크리토스는 우연히 진한 치즈 냄새를 맡게 되었다. 그는 이 현상을 자신이 새롭게 구상한 ‘원자론‘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를 해석했다. "치즈 원자가 내 몸속으로 날아 들어왔기 때문에 치즈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 치즈를 잘라서 나누고, 다시 잘라서 나누기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더는 자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것이 바로 원자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명언도 남겼다.
"이 세상에는 원자와 텅빈 공간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것은 모두 견해에 불과하다."

에피쿠로스 철학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 세상은 전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상도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몸 전체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죽으면 그것으로끝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살자!‘ 이렇듯 그의 철학은 실재론의 본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에피쿠로스는 ‘사물은 원자가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모이고 흩어진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목적과 사실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했기에 실재론에 기반한 에피쿠로스 철학은 많은 사람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기원전 385 년 무렵
플라톤의 『향연』
와인이 낳은 철학과 민주정

○ 고대 그리스인의 ‘와인=문명인, 맥주=야만인‘이라는 공식 같은 인식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기원전 334 년
향료를 찾아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원정에 나선 숨은 이유

o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운 과학 식견과 지식을 자신의 군대에 지혜롭게 접목시킨 알렉산드로스 대왕

누구나 한 번쯤들어보았을 법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은 사실 "모든 길은 페르세폴리스로 통한다"라는 말을 패러디해 만든 말이다.

기원전 300년 무렵
고대의 아로마 열풍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아로마 사용을 적극 권장한 까닭은?

○ 납 화합물로 고대 그리스 사회에 ‘미백 열풍‘을 불러일으킨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

기원전 250 년 무렵
알렉산드리아
거대한 소비 도시에 전 세계 지식을 축적하다

○ 무세이온을 건설해 전 세계의 지식을 알렉산드리아에 모으고자 한 이집트왕 프톨레마이오스 1세

지식을 무세이온에 모은다‘라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 항구에 정박한 선박에 관리를 파견하여 그곳에실려 있는 책을 모조리 제출하도록 했다. 그러고는전부 사본을 만들어 소장했다고 한다.

"기하학을 배우는 지름길은 없는가?"
"기하학에 왕도는 없습니다."

이는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와 당시 그리스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해 살고 있던 위대한 수학자유클리드(Euclid, c. 300 BC)가 어느 날 만나 진지하게 나누었다는 흥미로운 대화 중 한 토막이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세상의 부가 집중되었다. 도시인구는 순식간에 50만 명으로 늘어났고, 금과 은, 그밖의 온갖 사치품을 손에 넣고 싶어 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거대한 소비 사회가 형성되었다. 사람들의 욕망이 꿈틀대는 이 거대한 도시에서는 납·구리 등 금속으로 금을 만들려고 하는연금술도 발달했다.

기원전 221년
진나라의 중국 통일
소금이 세계사를 바꾸다

○ 소금을 대체하는 짠맛을 내는 분자는 존재하지않는다?!

소금은 인류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물질이다. 인간의 신경 시스템은 소금의나트륨 이온(Na+), 염화물 이온(Cl) 없이는 작동하지않는다. 두 이온이 세포 안팎을 드나들면서 발생한전기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소금이 미각에서 중요한역할(짠맛을 담당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이 시스템을유지하기 위한 인체의 노력이 아닐까.

기원전 55년(?) 무렵
루크레티우스의 시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원자론‘을 노래한 그의 시는 왜 배척당했나
①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7,400 행의 라틴어시를 통해 우주 만물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주창한 루크레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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