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번 몰락의 길로 접어들면 나쁜 일은 항상 아무런 예고없이 찾아오는 법이오. 그것도 두 가지 일이 함께 찾아오지. 하나가오면 반드시 나머지 하나가 그 뒤를 쫓아오는 식이지. 아마도 위지광의 이야기는 사실일 것이오. 동쪽에서는 서하군의 말발굽이, 서쪽에서는 회교도의 코끼리 떼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오." - P173
"우리가 읽은 경전은 극히 미미한 숫자에 불과합니다. 아직 읽지못한 것이 너무나 많단 말입니다. 읽기는커녕 펼쳐보지도 못한 경전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예요. 우린 경전을 읽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행덕의 몸에는 머리끝까지 뜨거운 전류 같은 것이 흘렀다. 그 열기로 인해 행덕은 한동안 온몸이 저려옴을 느꼈다. 몇 년 전인가, 자신도 승려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뱉은 적이 있었다. - P189
때는 경우 2년 을해 12월 13일, 송나라 담주부 출신의 과거 응시생 조행덕은 하서지역을 떠돌아다니다가 사주에 이르러, 지금 외적의 침입으로 온 나라가 소란하게 되었는바, 대운사 승려들의 경전을 둔황석굴로 운반하여 벽 속에 은닉하려 하나이다. 이에 경건한 마음으로 『반야바라밀경』한 권을 필사하여 석굴에 안치하려 하옵니다. 바라옵기는 용천팔부"의 보호와 원조로 성읍이 평화롭고 백성들이 강하게 하소서. 두번째 소원은 감주의 젊은 여인이 이승의 선행으로 인해 암흑의 저승에 들지 않고 현세의 업보를모두 소멸토록 하옵고 무한한복을 내리시어 공양이 충만토록 하소** - P205
날이 갈수록 행덕에게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고, 또한 그들의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인간의 무력함과 생명의 무의미함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종교가 흥미로웠다. (4장) - P262
재물과 목숨, 권력은 한결같이 그것을 소유하는 자의 것이었으나, 경전은 달랐다. 경전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불에 타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아무도 경전을 빼앗아 갈 수 없으며, 그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었다. 타지 않고 지금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9장) - P262
둔황석굴의 경전류가 천 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세상 밖으로 그모습을 드러냈을 무렵, 이 땅에 중국이라는 한족의 나라는 있었으나, 이미 서하라는 나라는 사라지고 난 후였다. 결국 작가는 나라가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소멸되지 않고 영원히 남는 것은 종교와 민족, 그리고 역사의 결연한 흐름 속에서 시대의 추이와 인간들의 삶을 묵묵히 응시해온 위대하고 유구한 자연이라는 엄연한 진리를 새삼 자각한것은 아니었을까.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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