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연화는 산을 하나 넘었다. 산을 하나 넘으면 엄마의 무덤이 있었고 그곳엔 갑이가 머물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쯧쯧, 시집은 다 갔구먼. 왈패는 소박맞는다." "시집이 어디 있는 건데요?" "지아비와 시부모가 있는 곳이지. 여자는 아들 낳고 남편 집안을 받들면서 살아야 하는 거다." "뭐 하러 남의 집에서 고생하면서 살아야 하나요?"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쯧쯧, 곧 궁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겠어…."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대낮처럼 빛나지 않는가? 태양이 밤에도 뜨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 와중에 전등불을 칭송하려는 사람들이 도깨비불을 한갓 반딧불 취급했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믿어줘야 살아남을 수 있어. 저런 전등이란 것이 밤을 밝히면 우리 빛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야. 왜 우리 종족들이 점점 사라졌는지 알 것 같아."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아버지가 건넨 농기구를 챙긴 사람들은 이상한 머리 모양을 하고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이 집 안팎을 수색하나 싶더니 신호처럼 한 마디 외쳤다. "무시케라, 붓츠부세!" 무슨 말이지? 신호를 외친 직후 그들은 길고 날카로운 칼로 아버지를 베었다. "아버…!"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붓츠부세. 붓츠부세. 붓츠부세…." 연화는 달릴 때마다 되뇌었다. 뜻을 알 수 없는 그 말을 엿 굴리듯 입안에서 음미했다. 그건 복수의 맛이 나는 말이었다. 피 냄새가 풍기는 단어였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제작 속도가 더디다는 핑계로 실력 있는 마을 대장장이들까지 점점 사라지는 것을 연화는 똑똑히 보았다. 농기구를 파는 사람들은 일본인으로 대체되었다. 조선의 아버지들이 자신들의 작은 역사 밖으로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대한제국 광무 3년 봄,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노면전차가 개통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고종의 지시로 콜브란이라는 미국 자본이 서울에 전차를 건설하고 운행을 개시했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산미증식계획은 계획만큼 생산량을 끌어올리지도 못했고 그나마 적은 생산분은 고스란히 일본으로 건너갔다. 국내에서는 식량이 부족해 만주 잡곡을 얻어먹으면 다행이었다. 경인선 증기 기관차가 달리는 새로운 시대가 왔는데도 죽도록 일해 봐야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는 인간으로 살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아서라. 제 불을 버리고 제 발로 잿더미가 되겠다는 미친놈이랑은 같이 못 산다." "근성이 있는 앤 줄 알았더니 너도 결국 겁쟁이였군! 그러니 조선이 발전을 못 하는 거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나혜석이라는 여성이 이혼고백장에 ‘정조는 도덕도 법률로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라는 글을9 써서 경성이 발칵 뒤집혔다고 했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진홍의 집 앞에서 그림자를 본 순간, 연화는 보았다. 세상을 경멸하다 정숙하지 않은 여자들을 본보기 삼으려는 놈팡이들이었다. 나라의 주권을 찾아올 힘은 없으니 여자들을 다스리는 좁쌀만 한 권력 따위나 휘두르겠다는 어둠이었다. 자기를 빛낼 불은 손톱만큼도 갖지 못해 결국 누군가를 태우는 걸로 자괴감을 드러내는 존재들이었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진홍은 얼마 전 공개적으로 이혼식을 열고 잔치를 열었다. 잔치에 동네 사람들이 난입해 난장판이 되었다. 진홍이 ‘아이는 엄마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 규정한 나혜석의 「어머니 된 감상기」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가 악의적인 소문이 난 직후였다. 자유연애를 주장하는 글을 잡지에 실었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다. 글을 공개했을 때 혼인 상태였다는 것이 나중에 알려지면서 지인 여성들에게도 지지받지 못했다. 진홍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부당한 폭행을 당할 때 곁에 아무도 없을 만큼 철저히 혼자였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산 아래 시간도 흘러갔다. 생산량의 반을 지주에게 뺏겨야 하는 소작농들이 산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화전민이 늘어났다. 벌목을 위해 사람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연화는 언젠가 갑이가 말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온전한 인간이 가장 먼저 끌려갔다. 명령에 따르려면 명령을 알아들어야 했다. 무기도 되지 못할 무기를 쥐고 가장 앞열에 세워져선 모가지가 날아갈 존재가 되는 거였다. ‘온전하지 못한 년’들은 차출에서 제외됐다. 명령을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판정받은 셈이었다. 불려가지 않은 대신 형벌 같은 빈곤이 기다렸다. 굴의 굴속엔 먹을 게 없었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아침부터 주린 창자 움켜쥐고서 종일토록 먹을 궁이 헤맨 아버지 빈손으로 돌아오니 날은 저무는데 기력 없이 방문 문에 쓰러지누나12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콩알만큼이라도 먹을 것이 있는 곳엔 반드시 수탈이 있었다. 뺏기지 않으려면 차라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게 나았다. 도움을 구하지 못할 바엔 처음부터 도움을 받지 않아야 했다. 자립이나 공생까지는 꿈꾸지도 않았다.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으면 다행이었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칠순을 앞둔 어느 밤이었다. 똑똑, 한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찾는 이 없이 홀로 지내다 보니 자신을 찾는 소리가 다가왔다는 걸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오랜만에 나랑 씨름이나 할 테냐?" 밖으로 나가보니 매끈하고 말쑥한 모습을 한 갑이가 서 있었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가로등 안에, 물레방아 안에, 수레 안에, 번개 안에…. 마을로 내려가며 갑이의 불이 담긴 엔진을 집집마다 나눴다. 땅을 잃고 화전민이 된 이들에게, 밤에도 뜨는 기이한 불과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를 보고 두려워하면서도 설렜던 이들에게, 과부와 고아와 기생과 신여성, 그들에게 혀를 차다 자신까지 미워한 이들에게, 남의 전쟁에 끌려간 이와 그 가족들에게, 자주독립을 위해 촛불과 횃불을 든 자들에게, 어둠을 물리치며 미래를 밝히는 모든 연구자에게, 한 인간과 한 민족의 완전한 주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곁을 밝히는 꺼지지 않는 불을 나눴다. 누군가에겐 위협이 되기에 별거 아니란 이름으로 불렸던 불, 누군가 꺼트리려 할 때 더 빛나는 혼불을. 갑이의 불이 사방에 번진 순간, 잠시 쓰러질지언정 꺼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불이 되어 타올랐다. 침략과 약탈을 땔감 삼아 세상을 불살랐던 제국의 불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갈보의 ‘갈蝎’은 진드기처럼 피를 빠는 벌레를 지칭한다.
-알라딘 eBook <클락워크 도깨비> (황모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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