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시도는 지각 있는 중국인들 자신에 의해서도 이미 지탄을 받은 바가 있다. 40년 전, 머잖아 있을 역사분쟁을 예감한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역대 중국의 대국적 배타주의를 사과하면서 발해가 우리의 옛 땅이었음을 확언한 바 있다. 우리가 연구를 심화시키고 변조 아닌 진실로 접근한다면, 발해가 고구려의 당당한 계승국이며 우리의 정통역사의한 부분이라는 정체성은 더 확연하게 밝혀질 것이다. - P155

이러한 발해이기에 침해를 당할때는 단호하게 주권을 행사한다. 북방의 흑수(黑水) 말갈이 당에 빌붙어  압박해오자 발해는 723년 대장군 장문휴(張文休)가  이끄는 수군 정예 2만을 보내 속전속결로 샨뚱(山東)  반도의 등주(登州)를 공략한다.  자신만만한 국력시위였다. - P159

발해의 당당한 국제성은 이러한 자주적인 국가권력 행사와 더불어상경(上京)을 시발점으로 하여  동서남북으로 뻗은 다섯 갈래의 국제교통망을 통해 진행된 교류와 그 결과로 이루어진 문화의 융합상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5대 국제통로는 상경에서 부여(夫餘府, 현 지린吉林)를 거쳐 거란으로 가는 거란도,  영주(營州, 현 쟈오양朝陽)를 거쳐 중원으로 이어지는  영주도, 압록강을 타고 샨뚱반도로 들어가는 압록도(일명 조공도), 동경과 남경을 거쳐 신라까지 연결되는신라도, 동경에서 동해를 건너 일본으로 가는 일본도이다. - P160

이렇게 발해는 완비된 국가체제와 주권국가로서의 확고한 국제성을 지니고 사통팔달한 국제교통망을 통해 세계와 교류하고 문화를주고받은 대제국이었다. 이러한 발해를 아예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지방정권 운운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용서 못할 거역이고 오만이며,
발해사를 정통민족사로 간직하고 있는 우리 겨레에 대한 야멸친 멸시다. - P163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고대사회의 금관은  모두 합해서 10점밖에 안된다. 그중 신라금관 6점과 가야금관 1점을, 그것도 가장 완벽한 것을 우리가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나올 것을 예견한다면, 우리나라는 문자 그대로 ‘금관의 나라‘ 라고 말할 수 있다. - P168

문제는 각개 구성요소에 대한 이해와 그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판단을 내리는 일이다. 아직은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나, 분명한것은 전부를 두드러지게 하는 입체적인 환조(彫, 봉황)나 어떤 부분만 두드러지게 하는 반입체적인 부조(浮彫, 몸체), 투명한 도안을 나타내는  공간적인 투조(透彫, 받침) 같은 조각의 모든 기법을  완벽하게 소화한 공예미술의 결정체이고, 신선사상과 불교사상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를 조화롭게 융합시킨 걸작이라는 사실이다. - P181

이상의 몇 가지 주요 구성요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와같이, 백제금동대향로야말로 백제인들의 높은 정신세계와 진취성, 그리고 독창적인 금속공예술을  입증해줄 뿐만 아니라, 남들과의 어우름의 향훈을 듬뿍 풍기고 있다. - P184

중 이 대향로를 첫손으로 꼽고 그 유치를 끈질기게 촉구했다. 그러면서 전시 포스터에 ‘백제금동대향로‘ 사진을 실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몇몇 심지 있는 전문가들의 대바른 거절로 이 대향로와영조어전의 반출은 불허되었다. 이것은 정정당당한 대응이었다. 일본역시 천황의 초상화 등 천황 관련 유물은 일절 해외 전시를 금한다. 유물의 존엄은 곧 나라의 존엄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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