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길 흰 비단을 드리웠는가 만 섬진주알을 뿌리었는가. - P144
성난 폭포가 한가운데로 쏟아지니 사람을 아찔하게 하는구나. - P144
산에 들어와 구룡연을 보지 않으면 금강산을 보지 아니한 것 같다네. 만폭동 벽하담은 사람으로 치면 얼굴이겠지만 그것도 구룡연에 비하면 아들 손자뻘인걸. - P146
人山不見九龍淵 不如不山金剛山 萬瀑洞中碧霞潭 在山如人目在顏 縱然較却比龍淵 猶與兒孫等一般 - P146
이름을 적어 선계(仙界)에 부쳤더니 산승이 구룡연에서 탑본(本)하여 보냈네. 모호하여 완연히 천년 전의 글자인 듯 삼생석(三生石)의 전설을 징험하였네. 붉은글자를 산에새긴 것은 한 소중한 인연이니 바다기운이 땅에 가득하고 붓은 서까래와 같네 이름을 일만이천봉우리 위에 부쳤으니 무량수불 같은 나이 누리기를 빌어보네. - P148
名姓寄題凌紫煙 山儈榻得九龍淵 模糊宛是千年字 可證三生石上綠 丹字鑱山一重綠 滄溟滿地筆如椽 托名萬二千峰上 乞與無量壽佛年 - P148
해강이 쓴 구룡폭의 ‘미륵불‘은 오늘날 볼 때 별 흠잡을 것 없는 거작으로 사람의 마음을 신비롭게 이끄는 그 무엇이 있다. 그러나 당시 문인·문객들의 눈에는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육당 최남선은 분명히 보았을 이 글씨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없다. 또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1892~1950)는 금강산유기(金剛山遊記)」에서 이 글씨를 보고는 이렇게 불쾌감을 말했다. - P152
폭포 왼쪽 어깨라 할 수 있는 미륵봉의 머리 복판에 ‘미륵불‘ 세자를 커다랗게 새기고 그 곁에 세존응화(世尊應化) 몇천몇백년 해강 김규진이라 하였으니 이만 해도 이미 구역질이 나려는데 그 곁에 시주는 누구누구, 석공은 누구누구, 무엇에 누구누구 하고 무려 수십명 이름을 새겨놓았으니, 이리 되면 차마 볼 수 없어서 눈을 가리우고 아까운 대자연의 파경(景)된 것을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아주 없어지려면 무슨 천재지변이 없는 한 몇천년을 경과해야 할 것이니, 해강 김규진은 실로 금강산에 대하여 대죄 (大罪)를범한 자라 하겠습니다. - P152
옛 기록에 보면 신계사 창터솔밭창대리의 뒷산 문필봉에서 온정리 뒷산인 하관음봉 노장바위 사이에는 두 마을을 잇는 고갯길이 있어 극락(極樂)재라고 불렸는데, 북한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이 고개를 ‘원호고개‘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고갯길을 통해 361 고지 전투 때 군사물자를원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갯길은 이미 끊긴 지 오래고 그 길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데, 하관음봉 꼭대기에 괴나리봇짐을 진형상의 노장바위만이 새롭게 드나드는 남쪽 금강산 관광객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 P170
그런가하면 저 건너에 엄지손가락처럼 생긴 우뚝한 작은 봉우리는 신선들이 장기두는 데 훈수를 심하게 하여 멀리 밀려난 ‘선암‘이란다. 언젠가 관광객 중의 한 중학생이 안내원의 이런 얘기를 다 듣고 난 다음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독선암은커녕 왕따봉이다." - P181
안심대에서 높은 벼랑을 바라보고 곧장 오르면 맑은 샘이 하나 있다. 물이 귀한 만물상에서 천선대 오르기 직전 이 높은 곳에 샘이 있다니 더욱 반갑고 신비로운데 그 물맛이 아주 차고 달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물맛에 취해 지팡이도 잊고 그냥 간다고 해서 망장천(忘杖泉)이라고 한다. - P188
추사 김정희는 만물상 유람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안개에 가리어 그 실상을 다 보지 못했는지 신계사 만루에서 쓰다(題明溪寺萬歲樓)」라는 시에서 자못 실망어린 말끝에 이런 말을 하였다.
금강산 만물상 구경거리는 이름이 실제보다 훨씬 낫다. 그 속엔 허황된 말이 너무 많아 본 모양을 모두 잃어버렸네. 게다가 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은 다시 신만물상을 정했다고 하더군 - P189
金剛萬物觀 最爲名過實 其語本自誕 面目殊全失 又有好事者 拈起新萬物 - P189
하늘땅 생겨날 때 이 산 먼저 태어나고 인간이 태어날 때 만물초가 생겨났다네. 만약에 풀이 먼저 생겼다고 한다면 금강산의 풀과 나무 그 누가 마련했다. - P192
此山天地最初開 草創人間萬物來 若說形形先有草 金剛草木又誰裁 - P192
그런데 조선시대 문인들은 자신들의 금강행을 꼭 유람(遊覽)이라고했다. 오늘날 우리의 어감으로는 놀유(遊)자를 쓰는 것이 너무 한가하고일없이 노는 것 같아 어색하게 들리지만 오히려 옛사람들은 이 말에서큰 매력과 의미를 새기고 있었던 것 같다. - P203
옛 문인들에게 있어서 ‘유‘란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편안하게자적하며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옛사람의 행장(行狀)을 보면 "어려서 퇴계에게 배웠다"고 하지 않고 "퇴계 밑에서 놀았다"고 했다. - P203
그러니까 명산을 찾아 거기를 유람하는 것은 곧 자연을 통하여 자신의정서를 함양하고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사물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명산을 유람하며 심신을 도야하는 것은 공자가 ‘유어예(遊於藝)‘한 것을 ‘유어명승(遊於名勝)‘하는 것이니 놀 유자를 쓰는 것이 당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의 금강산 기행문은 김창협의「동유기」, 홍여하(洪汝河, 1620-74)의 유풍악기(遊記)」 등 거의 대부분 기(記) 앞에 유(遊, 또는 游)자를 붙였다. - P203
그리하여 삼일포는 예부터 관동8경의 하나로 이름났는데 이중환煥, 1690~1752)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 팔도 모든 도에 호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영동에 있는호수들만이 인간세상에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그중 고성의 삼일포는 맑고 묘하면서도 화려하고 그윽하며, 고요한 중에 명랑하다. 마치숙녀가 아름답게 단장한 것 같아서 사랑스럽고 공경할 만하다. - P206
단서암 꼭대기에는 또다른 비석을 세운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은 이른바 매향비(理香碑)다. 매향은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한 질 좋은 향을 만들기 위해 향나무를 바닷물이나 갯벌에 오래 묻어두는 고려 때의 풍속이며, 매향비는 이런 일을 기록하고 복을 비는 기원문을 적은 기념비다. 이매향비는 1309년 강릉태수 김천호가 세운 것으로 19세기 초 기행문에서도 이미 그 비문을 읽을 수 없다고 하였고, 왕왕 중들이 물속에서 항목을꺼내 썼다는 글만 남아 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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