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는 남성들로 이어진 역사이지 여성들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는 남성 선조들에 대해서는 항상 이러저러한 사실들, 특별한 점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군인이었거나 선원이었으며, 공직을 수행했거나 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 들에 대해서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막연히 전해져 오는 이야기뿐이다. 누구는 아름다웠고, 누구는 빨강머리였으며, 누구는 여왕의 키스를 받았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우리가 그녀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는 이름과 결혼 날짜, 낳은 자식 수가 고작이다.

여성들의 목소리 사이에 이처럼 이상한 침묵이 끼어드는 데는 물론 법과 관습의 책임이 클 것이다. 여성이 ─ 15세기에 그랬듯이 ─ 부모가 택한 남자와 결혼하지 않는다고 매 맞고 내동댕이쳐지기 일쑤였던 때에는, 정신적 분위기가 예술 작품의 생산에 적합하지 않았다. 여성이 ─ 스튜어트 시대6에 그랬듯이 ─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법과 관습이 정하는바> 아내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될 남자와 결혼해야 했던 때에는, 글쓰기를 위한 격려는커녕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그러므로 19세기 초 영국에서 비범한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법과 관습과 풍속에서 무수한 작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 준다. 19세기 여성은 약간의 여가와 교육을 누렸다. 중류층과 상류층 여성이 자기 의사로 남편을 택하는 것은 더 이상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다. 네 명의 위대한 여성 작가들 ─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 ─ 중에서 아무도 자식을 낳지 않았고, 두 명은 아예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소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이 쓰기에 가장 쉬운 것이다. 그 이유를 찾기도 어렵지 않다. 소설은 집중을 가장 덜 요구하는 예술 형식이다. 소설은 희곡이나 시보다 훨씬 쉽게 들었다 놓을 수 있다. 조지 엘리엇은 작품을 쓰다 말고 아버지를 간호했다. 샬럿 브론테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감자 싹을 도려냈다. 여성은 공용의 거실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만큼, 인물을 관찰하고 성격을 분석하는 데 눈이 뜨였다. 그녀가 받은 훈련은 시인이 아니라 소설가가 되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톨스토이에게서 그가 군인으로서 전쟁에 대해 아는 것, 부유한 청년으로서 교육을 받고 온갖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인생과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을 제거한다면, 『전쟁과 평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질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반면,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빌레트Villette』, 『미들마치Middlemarch』등은 중산층의 거실에서 겪을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경험을 유보당한 여성들이 썼다. 전쟁이나 항해나 정치나 사업에 대한 어떤 직접적 경험도 그녀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들의 정서적인 삶조차도 법과 관습으로 엄격히 규제되었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하지만 그것은 결국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목적에 도달하려면 여성은 반대를 무릅쓸 용기와 자신에게 진실하려는 결의를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소설이란 수천 가지 다른 것, 인간적, 자연적, 신적인 온갖 것에 대한 진술이며, 그것들을 서로서로 연결시키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모든 훌륭한 소설에서는 이런 상이한 요소들이 작가의 비전에 힘입어 제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또한 그것들은 또 다른 질서, 즉 인습이 부과하는 질서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인습의 심판관은 남성들이고, 그들이 인생의 가치 체계를 수립해 왔으니, 소설 또한 크게는 인생에 기초해 있는 만큼 소설에서도 이런 가치들이 만연하게 된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여성의 삶에서 비개인적인 것의 증가는 시적 정신을 고무하게 될 것인데, 여성 소설이 여전히 가장 취약한 것은 바로 시(詩)적인 면에서이다. 여성들은 비개인적인 것을 향해 나아갈수록 사실들에 덜 함몰되고, 자신들의 관찰에 들어오는 세세한 사항들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데만 만족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성들은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관계를 넘어 시인이 풀고자 하는 좀 더 폭넓은 문제를, 우리의 운명이나 인생의 의미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예언하건대, 여성은 장차 소설은 덜 쓰되 더 훌륭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뿐 아니라 시와 비평과 역사를 쓸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것도, 여성이 자신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거부되었던 것, 즉 여가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는 황금시대, 저 전설적인 시대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명성>이라고 뉴캐슬 공작 부인 마거릿 캐번디시2는 썼다. 그리고 그 소원은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루어졌다. 현란한 옷차림, 유별난 습관, 새침한 행동거지, 거침없는 말씨 등으로 그녀는 생전에 위대한 사람들의 조롱과 유식한 사람들의 갈채를 받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위대한 학자들은 (책은 잘 쓸지 모르지만) 편지를 그리 잘 쓰지는 않아요. 내 생각에 모든 편지는 말하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할 것 같아요.>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만일 제인 오스틴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패지 못하도록 층계참에 누워 보았더라면,
11 그녀의 영혼도 폭정에 대한 반항심으로 불타올라 그녀가 쓰는 모든 소설은 정의를 부르짖는 외마디 외침으로 소진되었을지도 모른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그녀는 분만 중에 죽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 그토록 강렬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더없이 비참한 가운데서도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잃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아니, 내가 존재하기를 그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외쳤던 그녀가 36세의 나이에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원을 풀었다. 그녀가 땅에 묻힌 후 130년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었고 잊혀 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녀의 편지들을 읽으며 그녀의 주장에 귀 기울인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그녀는 마흔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처럼, 말없음표로 가득 찬 빈 종이를, 그리고 이 두 줄의 시를 남겼다.

아버지, 어떤 아마란스 꽃도 제 이마를 장식하지 못할 거예요.
지금 아버지 무덤가에 피어 있는 것으로 족하니까요.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폭풍의 언덕』은 『제인 에어』보다 한층 더 이해하기 어려운 책인 것이, 에밀리가 샬럿보다 더 위대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샬럿은 자기 글에서 웅변적이고 장려하고 열렬한 어조로 <나는 사랑한다>, <나는 미워한다>, <나는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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