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가을, 에드워드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 아널드 베넷이 『우리 여성들: 성(性) 불화에 관하여Our Women: Chapters on the Sex-discord』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인습적인 여성 비하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에 대해, 10월 2일 자 『뉴 스테이츠먼 』 지에 데즈먼드 매카시가 <상냥한 매>라는 필명으로 상당 부분 동조하는 서평을 실었다. 이에 대해 울프는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반론을 폈고, 10월 9일 자 『뉴 스테이츠먼 』지에는 울프의 편지와 그에 대한 <상냥한 매>의 답변이 나란히 실렸다. 이 지상 논전은 울프의 좀 더 긴 편지로 이어졌다.

<나는 다양한 여행길에서 두 종류의 사람들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그들은 서로 아주 비슷했다. 남자들과 여자들 말이다.> 그에 비해 나 자신의 경구는 이러하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서로가 그러하리라 믿는 것보다 실제로는 더 비슷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서로에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세계 문학은 어떤 여성 시인보다 위대한 남성 시인을 적어도 50명은 보여 줄 수 있다.> (그렇다, 새뮤얼 버틀러처럼 『오디세이아Odysseia』의 저자가 여성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마도 에밀리 브론테 만을 제외하고는 어떤 여성 소설가도 아직 남성들의 위대한 소설에 필적할 만한 소설을 쓰지 못했다.> ( 대체로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동의하기에 좀 더 의구심이 따른다.)
<도대체 어떤 여성도 이류 이상의 회화나 조각, 이류 이상의 음악을 창조하지 못했다.> (그렇다. 여기서 기준은 세계적인 걸작임을 기억하라.)
<어떤 여성도 비평에서 최고 수준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렇다.)
<어느 누가 유명한 여성 철학자를, 또는 일급의 과학적 발견을 한 여성을, 또는 어떤 분야에서든 일급의 일반화를 이룩한 여성을 들 수 있는가?> (들 수 없다. 다시금 기준을 상기하라.)
만일 똑똑하지만 대단히 똑똑하지는 못한 남성의 지성을 여성에게 옮겨 준다면, 그녀는 대번에 대단히 똑똑한 여성으로 여겨질 것이며, 일반적인 조직 능력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포드같은 여성이 나온다면 세계적인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나 렘브란트가 되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으며, 여성들이 경주에서 2등이나 3등은커녕 6등이나 7등만 해도 충분히 만족한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친밀함이란 재능이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무엇보다도 친밀함을 소중히 여기는 능력을 뜻한다.
바이닝거는 모든 훌륭한 도덕적・지적 자질을 M에게, 모든 나쁜 것을 W에게 귀속시켰다. 그 가정에 따르면 여성들은 대다수의 남성보다 자기 안에 W를 더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나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뉴턴은 소농의 아들이었고, 허셜은 독일 군악대의 일원이었으며, 패러데이는 대장장이의 아들이었고, 라플라스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만일 그들의 동시대인 가운데 어떤 여성이 그들보다 더 나은 처지에서 그들만큼 지적인 열정과 능력을 타고났다면, 그녀가 그들만큼의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이유를 나로서는 찾을 수 없다.
지성과 완두콩밭 한 뙈기만 있으면, 수도사가 멘델이 되기도 한다.
여성의 성취가 적었던 것은 대부분의 여성이 교육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탁월한 여성의 수가 늘어나고 그녀들이 훌륭한 업적을 이룬 것은 교육 덕분이다.
뉴턴은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문법 학교에 다녔고, 농장에서 일하기를 거부하자 성직자였던 한 숙부가 그에게 농사일을 시키지 말고 대학에 보내도록 권해 준 덕분에 열아홉 살 때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들어갔지요(『국가 전기 사전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32 참조). 말하자면 뉴턴은 1920년대에 뉴넘 칼리지에 가고 싶어 하는 시골 변호사의 딸이 부딪혔을 정도의 반대에 부딪혔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베넷 씨, 오를로 윌리엄스 씨, <상냥한 매> 등의 글로 인해 한층 더 좌절할 필요는 없었지요
여성이 발전해 왔다는 사실은 (<상냥한 매>도 이제는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녀들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는 사실을 나는 거듭 말해야겠습니다. 119년도 아닌 19세기에 왜 여성들의 발전에 한계를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교육만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경험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들과 다를 때(나는 여성과 남성이 사실상 같다는 <상냥한 매>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의 차이를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신의 모든 활동이 장려되어, 남성들만큼이나 자유롭게 그리고 조롱당하거나 얕보일 우려 없이 생각하고 발명하고 상상하고 창조하는 여성들의 핵심적인 활동이 항상 존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남성은 여성보다 자신의 견해를 알리고 존중받기가 훨씬 더 쉬우니까요. 만일 장래에도 그런 견해가 횡행한다면, 우리는 반쯤 문명화된 야만 가운데 남게 되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편의 영원한 지배와 다른 한편의 영원한 예속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정의합니다. 왜냐하면 노예 상태로의 타락과 맞먹는 것은 주인 노릇으로의 타락밖에 없으니까요.
이에 대해 <상냥한 매>는 짧게 답했다. <만일 내 견해를 표명함으로써 여성의 자유와 교육이 저해된다면, 나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여성과 소설1
이 글의 제목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즉, 그것은 여성과 여성이 쓰는 소설2을 가리킬 수도 있고, 여성과 여성에 대해 쓰인 소설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 애매함은 의도적인 것이니, 여성 작가를 다룸에 있어서는 가능한 한 폭넓고 탄력적인 태도가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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