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린 도독은 『난중일기』와 『징비록』에 공적에 욕심을 부리고 퇴각하는 왜군을 쫓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기술되어 있고, 춘원 이광수의 소설『충무공 이순신에서 진린이 이순신 장군의 공을 가로챈 나쁜 사람으로묘사된 이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진린 도독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가혹할 정도로 왜곡되었다며 객관적 자료에 의해 재평가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 P336

대국의 지원군으로 온 진린이 처음에는 술잔을 집어던지는 등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내 이순신 장군의 인품과 전술에 탄복하여 힘을 합쳐 왜적을 물리쳤고, 이순신 장군의 사망 소식을듣는 순간 놀라 의자에서 떨어져 가슴을 치며 크게 통곡했다고 한다. - P336

진린은 명나라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순신이 조정 대신의 모함을 받아 통제사 지위를 빼앗기고 백의종군한 바 있는데 전란이 끝난 뒤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걱정했다. 아울러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구하여 황제의 신하로 삼아달라고까지 했다. 명나라 황제가 이순신에게 팔사품(八賜品 보물 제440호)을 내려주었다는  것이 4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정설이었는데, 장경희 교수는 최근에 이 팔사품 또한 진린 도독이 주고 간 것으로 이후 제1대 통제사 이순신을 기억하는 상징이 되었음을 밝혔다 - P336

이순신은 하늘과 땅을 경영하는 재능이 있었고,
찢어진 하늘을 꿰매고 흐린 태양을 목욕시킨 공로가 있습니다. - P337

이순신 장군을 이처럼 한없이 칭송했던 진린 도독이었다. 진린은 귀국하고 얼마 안 되어 1607 년 광동 도독 재임 중 향년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1644년 끝내 명나라가 망하자 광동성에 살고 있던 진린의 손자 진영소(陳)는 수하의 수병 5명과 함께 오랑캐에 짓밟힌 조국 명나라를떠나 조상의 얼이 살아 있는 조선으로 건너와 고금도 관왕묘에 있는 조부 진린 도독의 영전에 절을 올렸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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