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눈은 한밤중에 이미 그치고, 오늘 아침에는 어이가 없을 만큼 해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집 창문에서 밖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포장도로의 눈이 말끔하게 녹아 있고 젖은 콘크리트가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점점 말라가는 게 눈에보였다. 집 지붕이나 건물 처마에 널빤지처럼 매달린 딱딱한 눈덩이도 땀을 뚝뚝 흘리며 녹아내렸다.

"아하, 그렇군." 사장이 또다시 자기 머리를 어루만지며 (그러면 머릿속에 든 기억을 수정할 수있는 걸까) 말했다. "그래, 사파이어, 사파이어였어. 세키네 씨가 모습을 감췄을 때도 그 반지는 가져갔다던데요."

뭐니 뭐니 해도 이렇게 조그만 회사를 신주쿠최고의 노른자위 땅에서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작은 회사일수록 더욱 남다른 능력이 요구되는 법이다.
대기업을 굴리는 일은 어떻게 보면 컴퓨터로작동되는 자동조종장치가 설치된 점보제트기를움직이는 것과 같다. 매번 심각하게 조종사의 능력을 검증받지는 않는다.

청년이 이윽고 전화 통화를 끝내고 혼마 쪽으로 급히 돌아섰다. 그 바람에 옆에 있던 워드프로세서 프린터의 종이 받침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허둥지둥 다시 끼우면서 말한 탓에, 혼마가 아니라 떨어진 종이 받침대에다 대고 사과하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면 상대가 위협적인 느낌을 받을 것 같아서 혼마는 자기 손 언저리로 시선을 돌렸다. 탁자 위에 볼펜으로 써놓은 낙서가 눈에 띄었다. ‘바보바보바보‘라고 쓰여 있었다. 의뢰인 중 하나가 변호사가 오기를 기다리다 끼적거린낙서일 것이다.
바보, 바보, 바보.

흔적을 남기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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