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 담배를 물고, 골 깊은 아내 엉덩이를 이윽히 노려보며, 잿밭에서 보리 베기 바쁘던 날, 입덧그친 지 여러 달이라던 아내가 지나가는 비에 흠씬 불어 겉치마로 살갗 한 채 점심을 내오자, 그뒷모양에 그저 못 있고 밭 가운데로 불러들여 엎드리게 했던 작년 여름 일을 새로 느꼈다.

"그런디 풍신허느라구, 먹은 것두 읎이 배지가오르내려 쌓니………… 먹던 쇠주 있으면 마눌이나 짓찧어 놓구 갈앉히면 모를까, 이 근력으로 밤샘헐까 싶잖은디…..."
김이 능갈치자 무름쇠 남은 대뜸
"이 일버덤 더 대무헌 일이 또 있다나. 쇠주 한병은 누가 받더라두 받으야지. 오늘만 진드근히젼디면 되여. 물 다 대걸랑 둘이 반반씩 개나 한마리 도리기해서 끄실르세."
하며 물렁하더니 이내
"가서 보리멍석 채널으야 헐 텐디 이러구 있네."

"민방위는 오정버텀 헌다남?"
이장은 새벽부터 방송을 했겠지만, 김은 양수기 소리에 싸여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것이다.
"한시버텀 니 시간인디, 출석 부르는 디 한 시간, 담배 참 한 시간, 부랄 까라는 소리(정관수술 권고루 한 시간씩 잡어먹다 보면 잠깐인걸 뭐."
"오늘 같은 날은 츰버텀 부락대항 축구시합이나 허라면 기특허겄구먼서두, 보고리 채느라구 연장 들구 나오랜다며? 이런 사람 일찍 빠져나오게술내기 공이나 차라구 허면 여북 좋아."

"암캐 잡었으면 음찝이나 한 가닥 맛보까 허구오니께………… 이왕 물 푸는 짐에 송사리래두 건져보잖구. 맑은 술을 날탕으루 먹으면 워치기 되는겨?"
"왜 맨탕이여?"
하고 김이 응수했다.

"뱃속에 안주가 오죽 쟁여 있어? 곱창이 읎나,
염통이 읎나, 앞으로 이삼십 년은 끄떡없이 안주일체를 뱃속에서 끝내줄 텐디. 술이나 대이구 붜주면 바깥이서는 얼근헐 일만 남는겨."
김은 둘이 곁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남은 병을마저 따서 주전자 뚜껑으로 돌렸다.
"해 붉어서 물 도둑질허는 이 사람들 배짱두 경매에 부치면 제값 받구두 남을 거라."

"워떤 늠이 질을 가다가 한참 목이 탈 때 내를만났는디, 그 동네 위생 좋아허는 늠이 보구 있다가, 바가지 갖다줄 테니 지달리라구 허면, 목 타는늠이 그 바가지 지달리구 그저 서 있겄남?"

"도둑질이라니, 냄 듣는 디서는 그런 소리 함부로 말어. 냄으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채뜨려 갉겨먹는 세상인디, 흘러가는 물에 논두렁 좀 적시기루 소문낼 거 있남."
김이 얼굴을 고쳐가며 말하자, 남도 그에 얼며서 됩들이를 하며 웃었다.
"턱밑에 물 나그네 지나갈 때 주막 채리구 들러가게 허는 건, 가보 잡구 버티는 기분허구 비스름헌 거라."

"말끝에 물음표 좀 웬만큼 달구, 더 낫은 방법이 있걸랑 담화를 해보라구. 도둑으루 멍덕 씌워잡어가려면 증거물두 따러가야 헐 게 아녀. 그러자면 천상 내 논에 실린 물을 담어가는 수백이 읎는디, 나두 다 집이 생각해서 허는 소리여."
하고 김도 지라심줄마냥 느적거렸다.
"수고스럴 게 뭐여. 양수기만 떼어갖구 가면 넉넉허지. 헐 수 읎어. 서루 뻔한 처지에 피차 삼가헐 노릇이지만, 안 봤으면 모를까 일단 봤으니께말루 해결 못허면 지서 신세 지는 수백이 도리 읎잖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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