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후추‘ 때문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후추를 향한 인간의 ‘검은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 P5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며
세계사의 큰 흐름을 만들어낸 위대한 식물 이야기

모든 것은 ‘후추‘ 때문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후추를 향한 인간의 ‘검은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도바스쿠 다가마(Vasco da Gama)의 위대한 항해도,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의 최초 세계 일주 탐험도 모두 ‘후추‘에서 비롯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활짝 열고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건설한 것도, 그 후 미국이 영국의 바통을 이어받아 세계 유일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승승장구한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후추‘가 원인이었다. - P8

콜럼버스는 후추와 전혀 다른 작물인 고추를 후추로 속여 스페인에 보냈다. 그에게 아메리카 대륙이 인도여야만 했듯 그곳에서발견한 고추 역시 후추여야만 했다 - P10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중남미 카리브해의 섬들이 ‘서인도제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후추와 전혀 관계가 없는 고추(Hot Pepper/Red Pepper)와  피망(Green Pepper), 파프리카(Sweet Pepper)의  영어명에 후추를 의미하는 단어 ‘Pepper‘가 공통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후추에 모든 걸 걸고 대모험을 떠난 콜럼버스가 고추 앞에서 난감해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나? - P11

라피도포라라는 식물은 자기 잎들에스스로 무수히 구멍을 내어그 사이사이로 빛이 스며들게 해서전체 잎의 광합성을 돕는다. - P13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장 사랑한 꽃은
장미가 아니라 감자꽃이었다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프랑스인이 즐겨 먹는 과자빵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잖아요."
민중이 먹을 빵이 없어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이 말은 역사가 남긴 수많은 악성 루머 중 하나다.
이 말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져 나갔을까? 장 자크 루소의「고백록』에 나오는 이야기 일부인데 사실 앙투아네트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말이었다. - P25

혁명 재판에 회부된 그녀는 온갖 혐의를 뒤집어썼지만  40명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모든 혐의가무죄로 밝혀졌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처벌할 근거가 없었으나 민중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성난 민중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끔찍한 사형기구 기요틴으로 공개 처형했다. 시민이 굶주리지 않도록 감자빵을 장려하고 제빵학교까지 후원한 앙투아네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 P26

감자는 가짓과 식물이다. 가짓과 식물 중독성을 지닌 식물이 유독 많다.
마녀가 사용한 풀로 악명 높은 유독성 식물 사리풀과벨라돈나, 만드라고라는 모두 가짓과 식물에 속한다. - P33

감자를 대중에 보급하려다
솔라닌 중독으로 죽을 뻔한 엘리자베스 1세 - P33

프리드리히 2세가 "앞으로 이 나라에서 감자는
귀족만 먹을 수 있다"고 공표한 이유 - P34

감자를 전체 국민에 보급하여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부국강병의 길로 나아가고 싶었던 프리드리히 2세.
그는 갖은 궁리와 노력 끝에 인간의 묘한 심리를 간파했고그 심리를 역이용하여 감자 보급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 P37

인간뿐 아니라
돼지의 식량 문제도 해결해준 감자 - P38

교묘한 대국민 심리전으로
감자 보급에 성공한 루이 16세 - P39

루이 16세는 앙투아네트 왕비의 치마폭에 싸여 사치와 향락을일삼고 국정을 소홀히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따르면 그러한 악평은 대부분 중상모략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감자 보급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루이 16세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책략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정도로영리한 군주가 아니었나 싶다. 마찬가지로 왕비앙투아네트도 우리의 통념과 달리 검소하고 국민을 사랑한 인물이었다는 재평가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 P41

1840년대에 들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아일랜드 전역에 감자역병이 창궐해지독한 흉작이 이어졌다. 대기근이 닥쳤고100만 명에 달하는 많은 사람이굶주림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갔다. - P48

감자 역병으로 인한 대기근은 아일랜드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식량이 바닥나고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아일랜드 사람들은고향을 버리고 신천지로 여겨졌던 미국을 향해 길을 떠났는데그 수가 400만 명에 달했다. - P50

토마토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많이 재배하는 작물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열매가 유럽을 거쳐아시아에 전해지기까지 몇백 년 동안 토마토는세계인의 음식문화를 바꾸어놓았다. - P56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 얼굴이 파랗게 변한다."
이 말은 의사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토마토가 우리 몸에 좋은 식품이라는 의미다. - P60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판다"라는 속담대로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음식 재료가 한정적인신대륙에서 케첩을 만들려고 애를 썼다.
그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것이 바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토마토였고,
결국 토마토케첩이 탄생하게 되었다. - P67

퀴즈를 하나 풀어보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재배하는작물 1~3위는 뭘까?‘ 1위는 옥수수다. 그다음으로 생산량이 많은 작물은 밀이고 3위는 벼다. 주요 곡물인 옥수수, 밀, 쌀은 ‘세계 3대 곡물‘로도 불린다. 그다음 4위는 감자, 5위는 대두인데 토마토는 세계 5대 주요 작물 바로 뒤인 여섯 번째로 생산량이 많은 작물이다. - P68

토마토 하면 흔히 이탈리아를 떠올린다. 그러나 전 세계 토마토 생산국 중에서 이탈리아는 생산량이 5위에 지나지 않는다. 토마토케첩을 대량 생산하는 미국도 3위에 그친다.
여기서 퀴즈 하나 더 전 세계에서 토마토생산량이 가장 많은나라는 어느 나라일까?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것 같은데 바로 중국이다. 그 뒤를 잇는 나라는 인도다. 여기까지만 보면 세계 인구 순위와 정확히 일치한다. 두 나라 모두 인구가아주 많고 그만큼 소비량도 어마어마하다. - P68

과일과 채소의 차이는 무엇일까? 간단히 정의하자면 열매를먹는 식물을 과일, 열매 이외의 부위를 먹는 식물을 채소라고 할수 있다. 식물학적으로 과일이란 식물의 열매를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토마토는 열매이므로 과일에 속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일이라는 단어를 식물학적 의미를 넘어서서도 사용한다.
다시 말해 디저트용으로 직접 먹으면 과일이고 요리재료로 일정한 조리단계를 거쳐서 섭취하면 채소다. 어차피 과일과 채소의분류는 자연계가 아닌 인간이 임의로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토마토는 과일인 동시에 채소로 보아도 무방하다. - P70

재판 결과는 어땠을까? 식물학자들이 과일이라고 주장하면서재판은 상고를 거쳐 연방최고법원까지 올라갔다. 당시 연방최고법원은 토마토가 디저트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채소라고 판결했다. 그에 따라 토마토는 식물학적으로는 과일이지만 법적으로는 채소인 셈이다. - P70

그건 그렇다 치고 어째서 토마토가 과일인지 채소인지를 두고법원의 판결까지 받아야 했을까? 그시절 미국 정부는 채소에는관세를 부과했으나 과일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는 공무원은 토마토를 채소라고 주장하며 세금을 내라고 했고 수입업자는 과일이라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섰다. - P70

유럽에서는 고기가 중요한 식량이었으나
고기는 부패하기 쉬워 보존하기 어려웠다.
향신료는 ‘언제나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주고
풍요로운 식생활을 구현해주는 마법의 약이었다. - P74

인간은 자신이 먹을 수 없는 볏과 식물의 잎과 줄기를 베어 초식동물에게 먹여 기르고 다 자란 동물의 고기를 식량으로 삼았다. 이런배경에서 야생의 초식동물이 가축으로 바뀌고 축산업이 시작되었다. 유럽인에게 가축을 키워 얻은 고기는 매우 중요한 식량이었다. 참고로 가축은 영어로 livestock인데, 이를 직역하면 ‘살아 있는 재고‘라는 뜻이다. - P76

향신료를 차지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하던 시대

이슬람권에서는 온갖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후추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십자군 원정 이후였다. 이슬람 지역으로십자군 원정을 떠난 기사와 병사들이 그곳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본 뒤 후추를 비롯한 여러 향신료를 자신의 모국에 전한 것이었다. 중세 유럽인들은 그 독특하고도 이국적인 향취에 흠뻑 취해후추 등 향신료를 열렬히 갈망하기 시작했다. - P77

오늘날 우리는 콜럼버스가 당시 도착한 곳이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자신이 도착한 곳이 인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메리카 원주민은 뜻하지 않게 세계사에 ‘인디언‘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는불운을 겪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던 무렵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인디언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결국 그 땅의 최초 발견자는 콜럼버스가 아니라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아메리카 원주민이었으며, 콜럼버스는 탐험자이자 침략자의 첨병에 지나지 않았다. - P81

1492년, 애초 인도에 가고자 했던 콜럼버스는
의도와 달리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498년 실제로 인도에 도달한
유럽인이 있었다. 바스쿠 다가마가 바로 그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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